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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Apr 20. 2019

의학, 법학, 그리고 STEM

일상의 변론

다른 학문 분야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학과 법학은 대체로 머리 좋은 사람들이 수학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생명유지와 연장, 질병의 치료와 예방, 재산과 명예, 생명과 신체의 자유 등 인류의 기본적 생존을 보장하고 문화적, 사회적 질서를 형성,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서 의학과 법학은 필수불가결한 분야이다. 때문에 엘리트들이 이들 분야에 집중되고 사회지도층으로 부와 권력을 거머쥐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요초과에서 공급초과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의대에 진학해서 예과, 본과,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국가고시(?)를 치른 후 전문의자격증을 따야 한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법대에 진학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수학해야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 해 의사 배출수가 3,000명을 초과하기 시작했고, 법조인 또한 1,000명 시대를 맞이했다. 그것도 모자라 의학전문대학원이라는 것이 생겨 의대를 나오지 않고서도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것이 생겨 법대를 나오지 않거나 사법고시를 치르지 않고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다만, 의학전문대학원은 몇군데만 남았고, 법학전문대학원은 사법고시의 폐지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한해 법조인 배출수는 2,000명을 초과한다.


전문가는 없고 사업자만!

생리적 욕구의 안정이 충족된 다음에 승인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할 수 있다. 의사, 변호사의 배출수를 늘리자 의학, 법학의 본질적인 연구와 탐구에 쏟아야 될 시간과 에너지를 마케팅에 쏟고 있다. 자극적인 홍보, 매스미디어 노출 등에 관심이 가 있고, 제대로 돈벌이를 못하는 전문직이 속출하고 있다. 라이센스는 있지만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결여된 채,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유혹해 건강과 사건을 망가뜨리면서 일을 배워나간다. 영업을 위해 브로커에게 이용당하기도 부지기수다.


학문적 연구와 결부되지 않은 실무는 스킬에 불과하고 새로운 치료법이나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야 하는 책무와는 요원해진다.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전수받지 못한 의사, 변호사는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나가는데,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와 의뢰인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내세울 강점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단가를 낮추거나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주사와 약을 처방하는 일뿐이다. 시장질서의 교란은 물론, 전문가다움을 유지하지 못 한채 영업자가 되어간다.


전문가의 육성은 도제식이어야!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인생의 큰 행운이다. 인생은 교과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전문가가 되려면 좋은 전문가로부터 도제식으로 배워 나가야 한다. 하지만, 기존 전문가들보다 배출되는 무늬만 전문가들 수가 많다 보니 케어가 될 수 없다.


부모의 자본으로 개인사업장을 개설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합동사업장을 만든다. 토론하고 협의하면서 문제를 해결한다고는 하지만, 고만고만한 수준에서는 솔루션이 도출되기 어렵다. 게다가 소명의식도 결여되어 있다. 그저 오래 해 먹을 수 있고, 안정적이고 뽀대난다는 생각에 돈과 시간이 있으니 의사, 변호사나 되어볼까라는 인사들도 있다.


싼게 비지떡!

병원도 잘 되는 곳만 잘 되고, 변호사도 사건이 몰리는 변호사가 있다.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마케팅을 잘 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좋은 스승밑에서 제대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정 비용을 통해 더 많은 환자나 고객을 유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업무에 집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가 인건비, 월세 등 고정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되면 업무의 효율은 떨어지고, 고객도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다. 싼게 비지떡은 여기서도 통한다.


역량있는 젊은이들은 STEM으로!

우리나라의 교육과 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하루이틀에 거론된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선견지명이 없고, 제도개선과 사회문화적 인식변화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듯 하다. 그저 안정적인 공무원,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이 보다 긴 여생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만연하다.


하지만, 세상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의학, 법학이 엘리트가 추구해야 할 학문의 분야로써 명분을 잃어가고 있다. 기술이 대체할 날도 머지 않았다. 기억능력과 논리적 사고능력은 엘리트보다 기술이 더 낫다. AI는 실수나 착오 따위가 없이 24시간 풀가동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공무원, 전문직종으로 몰려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미래로, 세계로. 그런 플래건이 기억난다. 하지만, 과거로, 노량진으로.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현주소이다.


의사, 한의사, 변호사 어느 직역이나 과열을 넘어선 경쟁을 치르고 있다. 수익을 내지 못 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편법, 탈법의 그림자로 발을 옮기려는 사람도 많다. 본업으로는 재미가 없으니 주식투자, 부동산투자 등에 대부분의 열정과 시간을 쏟는다. 그러다가 과도한 채무를 지게 된다.


돈과 시간만 받쳐주면 엘리트적 능력을 구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의학분야와 법학분야로의 진출이 용이하다. 포화상태를 거쳐 언젠가 장롱자격증으로 고이 보존해야 할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더 쉽게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집단적 행동을 한다.


매력은 만질 수 없고, 가질 수 없을 때 극도로 발휘된다. 누구나 만질 수 있고, 가질 수 있고, 될 수 있다면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제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기술공학 분야로 엘리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비정상적이라 할만큼 똑똑한 젊은이들이 너나 없이 의전과 법전으로 몰리는 현상은 크게 문제가 있다. 학문적 발전도 없을 뿐더러 개인적 자아실현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들과 딸에게 의학, 법학을 권유하지 않는다. 공무원은 더더욱 권유하지 않는다. 과학, 수학, 기술, 공학 분야로 시야를 돌리도록 의도하고 있는데, 뜻대로 되어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아무튼,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전문가들이 넘쳐나고, 영업방법 연구에 치중하는 전문가들을 보면서 답답한 심경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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