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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Aug 19. 2019

동해적 보복에 대한 야릇한 상상

일상의 변론

받은만큼 돌려주겠어!



받은 고통을 그 값어치와 같이, 그 이상으로 되갚아 줄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실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칸트는 서슴없이 동해적 보복, 동해적 응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악에 대해 같은 양, 같은 방식으로 반환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동해적 보복은 이런 식으로 축약할 수 있다. 


복수는 인간만이 가진 유일한 특징이다. 나만 고통받는다면 너무 억울하고 가해자가 행복하다면 너무 이기적인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아무래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른다. 불공평한 세상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목적은 복수와 보복의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데 있다. 


같은 고통을 맛보게 해 주어야 한다!


살인자는 사형으로, 훔친 자는 같은 가치의 재산 몰수로, 상처를 준 자에게 동일한 상해를 입히는 것으로 동해적 보복을 결심하니 실현수단은 구체적이고 다채로워진다. 그 끝의 모습은 어떨까. 내가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튕겨주면 마음이 정화되고 억울한 분노가 말끔히 사라질까. 그 목적을 달성한 후의 삶은 어떤 식으로 전개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가해에 대한 최고의 응보는 용서라고 가식적인 정답을 말하고 싶지 않다. 가해자가 아무렇지 않게 떳떳히 살아가는 것은 어딘가 정의롭지 않고 불공정해 보인다는 데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용서를 가해자가 인식하지도 못 하는데 홀로 성스러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응보를 직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망각하고 평온하게 살도록 방치하는 것은 주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만이다. 하지만, 스스로 직접 응보에 나설 필요는 없다. 믿음이 가지 않는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가해자를 처벌하고 이를 널리 알림으로써 그런 '가해'를 해서는 안된다고 교육해 왔다. 


우선 가해자가 자신의 가해행위의 결과와 잘못을 깨닫도록 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할 줄 알아야 한다. 가해자로 하여금 가해행위로 인해 누군가 상처입고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인식의 계기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스스로 보복하기 위해 중요한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나 대신 응징할 수 있는 제도와 절차가 응보할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사적인 응보는 또다른 응보를 낳거나 즐거운 결말을 내지 못 한다. 복수의 참극은 직간접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여전히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적법으로 평가받는 수단과 방법으로 응보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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