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최소한 20년은 젊어 보인다!
연대로 따지면 1990년대 이전, 환갑잔치는 결혼, 돌, 장례와 합쳐 초청장을 보내도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인생의 이벤트 중 하나였다. 지금은 환갑잔치한다고 초대를 하는 것도 민망하고 흥행에 성공하기도 어렵다. 60세는 아직 괜찮은 시기다. 죽음으로터 거리가 있다는 의미에서. 과장을 섞자면 지금 60세는 종래 40대와 비슷해 보인다. 평균여명이 80세, 90세, 100세로 연장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단순 계산에 의하더라도 40년은 젊어진 셈이다.
외모는 젊어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
외모는 20년 이상 젊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불수의근(의지대로 작동하지 근육)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심장, 뇌, 장기, 그를 둘러싸고 있는 혈관의 경우에는 외모가 젊어 보이는 것과 관계없이 노화속도에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7~8년간 새벽에 같은 헬스장을 다니고 있다. 남자 어르신들(70세이상)이 운동, 사우나 중에 당이 떨어지거나 혈압에 변화가 생겨 쓰러져 구조대에 실려 가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여자 어르신(72세)이 수영 중에 구조대에 실려 갔다.
새벽시간에는 어르신들이 주로 헬스장, 수영장을 채운다.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는 말이 사실로 확인되는 듯 하다. 외모는 분명 예전 그 나이대에 비하면 젊어 보이는데, 혈관, 혈압, 당과 같은 항목들은 노화의 속도가 느려지지 않은 듯 하다.
건강하게 늙고, 그리고 깔끔하게 죽고 싶다!
누구나 깔끔한 죽음을 맞고 싶다. 주사바늘을 몸에 꽂고 추한 꼴을 보이고, 비용을 써가면서 구차하게 연명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막상 그런 상태에 빠지면 할 수 있는 전부를 하려는 태도로 변한다. '지금 이 상태에서 벗어나 단 몇달만이라도 더 살았으면...'.
삶이 유지될 때는 깔끔한 죽음을 고대하는 듯 하다가 막상 죽음에 임박하면 삶을 부여잡게 되는 것이 본연의 심리일 것이다. 노화, 수명의 연장이 행복지수를 높여 주지는 않는다. 질병으로 숨만 붙어 사는 것은 오히려 불행할 수 있다. 축적된 자산이 충분하면 까 먹으면서 살 수 있겠지만 까 먹을 자산이 부족하면 내일이 걱정된다.
65세!
65세까지 일할 수 있다. 가동연한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 65세다. 65세를 넘기더라도 순순히 일할 능력이 없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심리적으로 아직 건재하고, 신체적으로도 아직 건재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시장이 핵심이다. 시장에서 소외되고 배척당하면 우울해진다. 쓸모없는 존재로 평가받고 그렇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불만이고 북받쳐 오르는 시장재진입에 대한 의욕과 일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거나 더 심해진다.
질병, 빈곤, 외로움, 실직. 노화가 가져다 줄 수 있는 대표적인 고통이다. 시장이 노화를 외면하고, 언젠가 젊은 세대들도 외면받을 날이 올 것이다. 목격하면서 외면의 힘에 다가서고 있는 우리는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시장, 시장 밖에서 노화에 대한 진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소년은 노년이 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