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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Jun 17. 2019

변호사 천태만상 #5 Paper power

일상의 변론  

전문가, 전문직의 오류와 실태에 대해 많은 일반인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이기 때문에 변호사의 실태에 대해 각성과 반성의 기회를 가지고 일반인들이 변호사 선임에 대한 판별의 눈을 가지길 바란다.  나 자신에게는 물론 수많은 전문가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말 vs 글

말을 잘 하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이 밀접한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말을 잘 하는 것도 능력이고 글을 잘 쓰는 것도 능력이다. 하지만, 말은 입에서 뱉어지면 주어담을 수 없고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 확인할 수 없다. 물론, 녹음이 되어 있다면 상황은 다르다. 하지만, 글은 수정이 가능하고 어느 시점에서나 가독이 된다. 


말을 현란하게 잘 하면 유식해 보이고, 세련되 보인다. 그리고, 말은 아무래도 순발력이 있어서 청자에게 빠르게 전달된다. 쉽고 간결한 말을 들으면 이해도 빠르다. 하지만 말은 다른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한 저장이 되지 않는다. 듣는 사람의 기억력의 수준에 따라 보존기간이 달라진다. 


글은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말보다는 불편하다. 그리고, 종이, 연필, 컴퓨터 등 무형의 사고적 결과를 일정한 형식에 담아야 하기 때문에 보조적 수단이 반드시 있어야 제3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말 잘하는 변호사 VS 글 잘 쓰는 변호사!

말과 글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변호사의 업무영역으로 들여와 비교하자면, 말 잘하는 변호사와 글 잘쓰는 변호사의 구별로 논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TV, 드라마, 영화 속에서 비춰지는 변호사를 소재의 그것들은 변호사가 대부분 엄청난 말을 하고, 보고 있노라면 주인공인 변호사가 능력있어 보인다. 하지만, 현실과 실무는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다. 


법정에서 말을 많이, 잘 하는 변호사는 개인적인 기준에 의하면 두 가지 요인에 의한 경우가 많다. 첫째, 의뢰인이 방청석에서 보고 있는 경우, 의뢰인에게 변호사로서 판사에게 의뢰인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쇼맨쉽을 부리는 것이다. 둘째, 사건이 불리한 경우이다. 할 말이 많다는 것은 상황이 불리하기 때문에 간결한 쟁점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을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문제는 변호사가 법정에서 말을 잘하고 아무리 많이 해 본들, 기록되지 않는한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 재판은 서면공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말로써 재판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서류에 의해 주장과 반박이 이루어지고 판결 또한 말이 아닌 글에 의해 이루어진다. 


일반인들은 "변호사가 말을 저렇게 못 해서 어떻하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유능한 변호사는 사건이 유리할 경우나 의뢰인이 방청석에 따라 붙어 있다고 하더라도 재판당일 이전에 충실히 서면으로 주장과 증거를 정리해 제출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말 잘하는 변호사보다는 글 잘쓰는 변호사가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변호사가 쓴 글은 모두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때문에 변호사는 말보다 Paper power가 좋아야 한다. 경험이 부족하거나 재판준비를 부실하게 한 변호사가 말이 많다. 이런 경우 판사는 "정리해서 제출하세요!"라고 답해 준다. 


다시 말 VS 글!

말은 적게 할수록 유리하다는 것이 사견이다. 말을 많이 할수록 그만큼 말을 뿜어내기 위해 정돈되지 않은 사고인 상태로 단어를 조합해 성대를 놀릴 수 밖에 없다. 누구인들 말실수를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 말은 또한 논리적 사고에 의해 표출되기도 하지만 감정에 의해 표출되는 경우도 있다. 말은 수정이 불가해 일단 누군가의 귓청에 닿는 순간 쾌감, 불쾌의 반응을 일으키게 되고, 그 결과는 되돌리기 어렵다. 


글은 쓰기시작한 후에 사고할 수 없다. 사고한 후에 글을 쓸 수 있다. 말은 생각없이 내뱉어질 수 있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말은 할줄 안다. 글은 사고의 정제이고, 사고의 척도이다. 말 역시 훈련이 필요하지만, 글 쓰는 것만큼 훈련을 요하지 않는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독서, 사유,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방 변호사가 적어 낸 서면을 읽어보면 어떤 경우는 스스로도 설득당하지만, 어떤 경우는 '변호사가 쓴 글인지?'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오탈자도 있고, 한 문장의 길이 또한 가지각색이다. 일단 격식이 없으니 읽기가 불편하다. 그런 서면은 내용 또한 부실하다. 논리와 증거에 의한 주장도 아닌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구분도 안된다. 변호사의 수준이 드러난다. 


의뢰인이 하는 말을 그대로 이기하는 변호사들도 적지 않다. 변호사가 아닌 대필하는 수준의 대서자일 뿐이다. 전문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전문적 판단에 따른 결론과 그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 그리고, 견해와 의견이 있어야 한다. 훌륭한 의사 역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문진과 진료를 통해 적절한 처방을 한다. 의뢰인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진술하거나 글로 옮기는 변호사는 환자의 말만 듣고 처방하는 의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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