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삶이란 무한한 고난 자체
사람들과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적응문제는 자신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에 대해 골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수 있지만 보통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에 비해 뒤쳐지고 외면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열등감이 생긴다. 정도가 심해져 열등감이 깊게 뿌리내릴 수도 있고, 사람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환경, 비교대상 집단, 시기 등에 따라 열등감을 달리 평가할 수 있을지라도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열등감의 분량이 조정되거나 극복되어 다른 형태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한 스스로를 자존감 높은 존재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끊임없는 닦달!
열등감의 조정과 극복에 실패하게 되면 '괜찮은 사람', '괜찮은 수준'으로 살고 있음에도 만족하는데 불안감을 느낀다. 반복적인 일상이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전한 삶 자체에 만족하기 어렵고, 다른 사람들보다 과도하게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튀는 행동을 하여 자신을 드러내야만 열등감을 비로소 열등하다고 무시할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든다.
자신을 닦달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서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시선을 보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면 겉으로는 친화적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내심으로는 적대감, 승부욕, 오기와 교만과 같은 것들로 사람이 꽉꽉 채워진다. 열등감을 극복했다고 스스로 평가하게 되는 착각에 빠지게 되면서 결국은 지쳐간다.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 중 일원!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스스로를 늪으로침잠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동순위 내지 상위에 올려 놓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어느 경우나 회복과 치유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보다 항상 우위에 있어야 하고,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평가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자신의 결정이 보다 타당하다는 결론에 찬성표를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주목받기 위해 갖은 방법과 수단을 다 사용한다.
늪으로 들어가게 된 열등감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실재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저평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열등감의 두 진행방향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쪽도 불편하다. 우리 모두는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이고, 그런 의미에서 비교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는 없다.
자신과 모두의 책임!
비교대상과 기준이 존재하고, 사회가 순위를 매기는 식으로 경쟁구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힌 채 힘들어할 수 밖에 없다. 지나친 열등감으로 사람들과의 적응에 있어 문제를 겪는다는 사실은 비단 그 개인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본질적, 생래적으로 다른 존재들을 규격화시키고 형질균등을 시도해 왔기 때문에 모두가 지치고 과장된 행세를 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열등감이 비록 개별 개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치유와 회복의 문제는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