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선배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뭘 그렇게 아둥대며 바쁘게 사냐! 이러나 저러나 세끼 먹고 사는 게 다 같은데, 그러니까 몸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쯧쯧"
형처럼 능력이 뛰어나지 못 하니 부지런하기라도 해야죠라고 말하고 나니 한구석이 씁쓸해짐을 느낀다. 분주한 삶이 가져다 준 수혜는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없고, 피로의 누적과 자신을 돌볼 에너지와 시간만 부족해지는 상황만 초래한 듯 하기도 하다.
나는 준비한다. 이유는...
누구나 연애를 해 본 경험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쓰라린 이별을 맞아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은 경우 세상과 절연된 느낌이 들고, 세상의 모든 유행가는 고통과 감정을 대변하는 시로 변하는 그런 경험이 있다. 준비없는 이별이 가져다 주는 고통은 회복하는데 있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사람이란 먹고, 싸고, 자는 것에 있어서 공통적인 유사성을 공유한다. 하지만, 긴 텀으로 볼 때 저마다 삶의 질과 모습이 달라지는 이유는 먹고, 싸고, 자는 순간 이외의 순간에 무엇을 하고, 행해 왔는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준비없는 이별이 속절없이 심각한 고통과 슬픔을 쓰나미처럼 몰고 온 것처럼 인생을 준비없이 생물학적 수준으로 살 수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이것저것을 준비한다.
준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익히고 행동하고 경험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성실에 대한 하늘의 보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준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보인다. 그리고,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모처럼 발견한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준비 '있는'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통틀어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위로다운 말이 있지만, 사견으로는 절호의 기회는 단 한 차례일 뿐인 듯 하다. 그 기회를 발견하고,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준비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아직, 지금 만족스럽지 못 한 자신을 발견하고, 비교평가에 의해 상당히 뒤쳐져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와 당신에게 그 한 차례의 기회가 아직은 오지 않았고,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 뿐이다.
일상을 게우듯 살지 말고 준비가 '있는' 삶의 끈을 놓치 말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내심 "형이 틀렸어요"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