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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Aug 29. 2019

억압의 언어적 표출

일상의 변론

20여년전 과외로 학비, 생계비를 벌던 시절이 있었다. 상당히 높은 보수를 받았고 재산세도 내지 않았다. 다만, 가르치는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걱정과 그 결과책임에 대한 부담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가르치던 아이들 중 하나가 매우 똘똘하게 생겼고, 가정환경도 매우 부유했다. 아버지는 양말공장의 사장이었고, 어머니도 매우 가정교육에 열성이 높았던 분이었다. 그 아이는 아주 타이트한 일과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무랬던 모양이다. 시무룩한 표정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자 이러저러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공부는 집중과 몰입에 있지, 지난한 구속은 학습효과가 없다는 취지의 말씀을 드렸다.


이 일로 아이와 엄마는 매우 다투었고, 나중에 서로가 울었다. 나는 중간에서 목격자였다. 하지만, 한번 푸닥거리를 하고 나니 애증은 애정으로 변한 듯 했다. 나는 고시공부를 위해 과외를 그만두게 되었으나, 그 아이가 공부를 여전히 잘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억압의 순간은 한 순간이지만, 고통은 상당히 지속된다. 충격은 순간적이나 고통과 잔상은 오래간다. 트라우마는 그런 것이다. 우리는 억압, 고통을 받는다.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외부적 충격과 고통에 의해 일그러진 삶의 일부를 보담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에 의해 구속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극복해서 디딤돌로 삼는 사람이 있다.


차이는, 억압을 표출하였는가. 폭력적 방법이나 타인에게 가해적인 방법이 아닌, 언어적인 표출과정을 거쳤는가에 있다. "나는 상처받고 고통받았어요. 제발 다시는 그런 일 따위는 겪고 싶지 않아요"


언어적 표출만이 억압의 해소 키이다. 패스워드는 말로써 표현하는 것에 있다. 이런 상황이 치유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환경도 어시스트를 해야 한다. 억압, 절제. 다 좋다. 하지만, 언젠가는 폭발적인 화산처럼 충격적인 모습으로 삶을 몰아갈 수 있다. 언어적 표출만이, 소통만이 답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혀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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