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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Aug 31. 2019

이자에 대하여 #2 시간

실무에세이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보증을 제공받는다. 정한 기한까지 돈을 갚지 않으면 안토니오의 근육 1파운드를 베어 내겠다고 약정했다. 안토니오는 돈을 갚지 못 했고, 샤일록은 소송 끝에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절단해도 좋다는 판결을 얻지만, 판사로 변장한 포샤가 "대신 피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살만 잘라라"라고 하여 안토니오는 위기를 벗어난다.             

                             

기업, 사업자는 빌린 액수 이상으로 초과이득을 실현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돈을 빌린다. 하지만, 단순히 소비를 위해 돈을 빌리는 경우에는 이자는 그 액수만큼 돈을 빌린 사람에게 경제적 손해를 가한다. 손해의 크기는 이자의 비율이나 액수만큼일 것이다.


과거 교회나 철학자들은 이자를 '죄'로 바라보고, 이자수령행위를 죄악시한 적도 있었다. 세익스피어의 희극처럼 높은 이율의 이자는 더욱더 죄질이 나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이자를 당연시하고, 다만, 너무 높은 이자율에 대해서만 반감을 가질 뿐이다. 차용 즉후 마땅히 이자가 붙는다는 공식이 확립되어 있다.               

                           

엄격하게 따지고 들면 돈, 화폐는 자동차도 아니고, 생선도 아니며 쌀도 아니다. 스마트폰도 아니다.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고 촉감이 있기 때문에 물건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돈 자체에 고유한 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돈, 화폐는 물질적 가치는 형편없다고 하더라도 내재되거나 표상하는 가치가 있다. 그것으로 물건을 살 수 있고, 사람을 부릴 수도 있다.



돈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당장 자동차를 산다면 돈의 가치는 그만큼 소멸하고 만다. 대신 동등한 가치의 물건을 취득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를 인내하고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소비의 충동과 욕구를 참고 돈의 용도가 더 절실한 사람에게, 돈의 가치를 불릴 수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구매하고 싶은 욕구의 충족은 돈 빌려간 사람이 돈을 반환할 때까지 유보된다. 시간이 지나 돈을 반환받으면서 같은 액수를 지급받는다면 욕구의 인내와 절제를 돌이켜 볼 때, 어딘가 억울하다.



이자가 죄악의 범주에서 탈출하는 국면은 시간의 양이 아닐까 한다. 현재 100만원으로 100만원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타인에게 대여함으로써 구매력을 상실하고 그 상실한 기간만큼 인내와 절제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이자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이자만 제거되면 돈을 빌린 사람은 돈을 빌리기 전후로 재산상태에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 100만원이 잠시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언젠가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전체 재산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이자가 붙으면 빌린 돈으로 이자 총액만큼 가치증식을 하지 못 할 경우, 전체적으로 돈을 빌린 사람은 이전보다 가난해 질 수 밖에 없다.


가난한 상태로, 변동이 없는 상태로, 자산이 증가한 상태로 향할 것인가는 채무자가 하기 나름이다. 여기까지는 옳아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자가 개입하고 이자가 지나칠 경우, 과한 정도는 개별 대출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채무자를 가난한 상태로 몰고 갈 확률이 높다.


이자가 현재 소비의 유보, 절제, 인내에서 타당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더라도 여전히 이자에 대해 적지 않은 반감이 생기는 이유는 이런 대목 때문이다. 다만, 이자는 물리적 기능이 전혀 없는 화폐에 대해 시간적 가치가 산입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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