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에세이
남녀가 연정을 품고 아름다운 가정을 꿈꾸며 같이 살기로 하는 계약에 수반된 의례적인 절차가 결혼이다. 하지만, 결혼은 연정이 식어 사라지더라도 아름다운 가정에 대한 꿈, 적어도 단순한 가정에 대한 꿈을 위해 실천하고 인내해야 하는 구속력이 매우 강력한 의식이자 제도이다.
그에 반해 이혼은 결혼계약을 해지하고 품었던 꿈과 구속력의 소멸을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유발하는 과정이다. 자발성은 이혼을 강력하게 원하는 쪽에 좀더 비중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혼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결정에 이르게 된 사정만 보면 양측 모두 비자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혼은 누군가의 자발적인 행위와 결정에 의해 실행된다고 생각한다.
'사과나무에서 배는 열리지 않는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대가 나와 맞지 않는 성향, 습관, 언행을 쉽게 발견하게 되고, 그 부분에 대해 '나'를 기준으로 맞추어 달라거나 개선해 달라는 요구가 증가한다. 최악의 경우 상호간에 자연스럽게 부합하는 요소라고는 전혀 없다는 미확정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상대의 소득수준, 내조와 외조의 수준, 생활습관, 양육방식, 처가와 시댁에 대한 처우나 행태, 음식조리 수준, 잠버릇, 선호하는 채널 등에 이르기까지 부조화스럽거나 부합되지 않는 면면들만 인식하게 되고, 하모니나 변증적 개선은 불가능해 보인다는 생각에 빠진다.
성격차이가 심해서 이혼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당사자를 대면하면, 공통적이고 유사한 점이 '사과나무에서 배가 열리기를 바란다'는 사실이다. 성격은 당연히 같을수가 없는 것이고, 형성된 성격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항구성을 가지고 있다.
어느 부부가 천생연분인 것처럼 척척 죽이 맞아 떨어져서 살 수 있을까. 물론 그런 부부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여지는 자체를 수용하고 보유하는 자체를 표현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결혼일 뿐이다.
상대를 개선시키고, 개화시키고, 발전적인 변화를 요청, 요구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 생각이고 지극히 이기적인 요청, 요구일 뿐이다. 사과나무를 잘 타일러 배를 맺어주면 안되겠니라고 해 본들, 배를 원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자문해 보면 결과는 자명하다.
이미 자발적인 선택과 결정에 의해 사건을 의뢰하므로 나는 재판을 해야 하겠지만, 나 자신 뿐 아니라 모두에게 수용과 인정만이 결혼생활의 배터리임을 잊지 말아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