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타고나기를 누구는 금수저, 누구는 흙수저를 선택하지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살아보면 그 차이가 얼마나 지극하며 절망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되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은 운명적 불공정과 불운을 탓하기 시작하다가 사회의 불공정에 대해 분노를 일으킨다.
부의 세습은 역사적 오랜 유래를 가지고 있고, 세금만 제대로 납부한다면 적법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구는 맨몸으로 달여야 하는데, 누구는 자동차를 타고 경주한다면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명백하다. 하지만, 믿고 싶은 진실은 그 부의 원동력이 그 인생을 언제까지 추동하지는 못 할 것이라는 점이다. 돈은 소비되고 사라질 수 있는 물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교육세습이다. 돈이 많아서 양질의 교육을 받는 것을 두고 나무랄 수 없겠지만, 사회적 지위가 있는 세력가와 엘리트, 지도자들이 그 위세를 이용해 제 자식의 스펙을 매우 원활하게 쌓아준다. 때로는 놀이동산의 프리패스 이용권처럼 대학, 대학원, 직장까지 필요한 요건을 교묘하게 구비한 것처럼 위장해 줄서서 기다리며 인내의 노력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린다. 교육세습의 폐단은 잠을 설쳐대며 열심히 노력하는 많은 젊은이와 평범한 사람들에게 희망보다 절망, 사회에 대한 분노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누구의 자식은 입학전형의 구체적인 요건까지 변경할 수 있는 부모를 가지고 있다. 누구의 자식은 지적 능력과 각고의 노력으로 인생은 참다운 노력으로 값지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티지만 교육세습 앞에 희망은 절망이 된다. 그 부모는 고작 한달에 200만원 정도밖에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노해야 할 줄로 안다. 공정한 사회는 그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하는 정치가와 같은 일부 사람에 의해 실현될 수 없다. 국민의 모든 눈과 분노가 불공정을 감시하고 용서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불공정하지 않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가장 낭비인 투자는 군사비이며 가치있는 있는 투자는 교육 투자이다. 타고난 능력과 인내, 그리고 노력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위한 교육투자가 실현되어야지 교육세습으로 분노하는 젊은이들을 좌절시켜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