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사냥에 성공하거나 풍년이 들거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등 즐거운 감정이 발생하게 하는 사건에 대해 예로부터 신이나 정령, 여러 대상에 대해 감사하고 모여서 축제를 벌이고 한바탕 신나게 유희를 즐겼다. 이런 태도는 전통, 관습 속에 전래되어 여전히 일부는 남아있는데, 즐거운 감정과 생각이 들때, 그러한 사건이 자주 반복발생할 때 행복하다고 연결짓는 사고와 인과구조가 우리의 DNA에 잔존하고 있는듯하다.
행복은 떨어진 복과 다르다!
국어사전을 펼치면 행복이란 복된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하거나 그런 상태로 정의되어 있다. 행복이라는 말 속에 '복'은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만한 행운으로 정의된다. 행복은 어느 구선인가 행운이 결부되어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행복이 행운에서 발생할 수는 있어도 행운과는 다르다. 행운, 즐거움이 발생하는 복이란 노력 대비 결실이 큰 경우를 가리키고, 그럴때 복받았다거나 운이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행복을 생각하면 일할 것 다하고, 피나는 노력을 다해 얻은 결과에서 행복감을 느끼기가 어려워진다. 5억주고 산 아파트가 10억이 되거나 1억 주고 산 주식이 2배로 뛰어야 하는 그런 사건이 발생해야 행복하구나라고 여기게 될 가능성이 많다.
행복은 즐거움과도 다르다!
취기에 춤추고 노래하고 남녀가 포옹하며 감각적 기쁨을 충만히 누릴 때 행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때로는 인생이 무료해서 마약과 도박과 같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도 한다. 자신만 즐겁다면 그것이 행복한 일이고 삶이라는 인과관계를 설정하기가 쉽다.
물론, 즐거운 감정과 감각은 추상적인 행복의 일부를 구체화시키는 요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행복이 즐거운 상태, 그러한 상태를 야기하는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일시적 즐거움을 주는 원인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건강을 해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고 문제투성인 것처럼 보인다. 즐거운 감정이 발생하는 행위만 해서는 고난과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가 없다.
즐거움만 좇아 인생을 산다면 어딘가 인생의 수준이 고품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나중에 죽음을 맞이해 양분으로 변화될 감각적 즐거움은 그 당시, 그 시절로 끝나버린다. 사람이 남길 수 있는 것은 이름과 자식, 그리고 그 사람의 정신적 내용이다.
행복을 외부적, 감각적, 우연, 행운, 가성비 높은 소득 등의 시선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정신적 수준의 향상과 좋은 성품을 기르고 유지하려는 노력, 그리고, 고난의 극복과 문제의 해결을 위한 수고 끝에 주어지는 안도, 주어진 일에 대한 애정으로 행복의 원인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