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삶의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론이 획일적이기 보다 다양한 경우가 더 많다. 이분법적 방법, 흑백의 논리에 의한 방법, 그리고 여기에 속하지 않는 수많은 문제해결방법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분법, 흑백논리를 취한 사람들은 거기에 속하지 않은 다수를 '회색'으로 치부한다. 세상에는 흑과 백 사이에 회색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색채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양극단의 카테고리에 속한 해법을 원하지 않는 다수가 존재한다.
'정-반-합'의 변증법적 해결방법 역시 이분법, 흑백논리를 전제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절충안일 뿐이다. '정'과 '반' 사이의 그 어느 지점에서의 해법이 아니라 제3의, 새로운 해결책도 무수히 존재한다. 다만, 기득권, 사익(집단과 조직의 이익도 사익이다), 자존심 때문에 기존의 것을 고수하기 때문에 제3의, 새롭고 다양한 해결책에 대해 관심조차 두지 않게 된다.
세대, 지역, 학력, 직업 등 사고패턴이 고정적으로 경색되도록 만드는 요소는 다양하다. 정치성향과 선호 또한 관점과 해결방법 도출에 대한 사색을 경색시키는 요인이다. 특정한 관점이나 입장에 서게 되면 대화는 일방적인 주장이 되고 그 과정에서 감정마저 이격된다. 결국, 그토록 추앙하던 이성과 합리에 의한 문제해결과는 이별한 채, 힘, 세력과 같은 물리력이 동원되거나 반대편에 서 있는 대립자의 약점을 파고드는 수단을 강구한다.
승자독식의 결론은 민주적 해결방법이 아니다. 최소한 절충상태에 이를 때 민주적인 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집단이성이라는 것도 최상의 것은 아니다. 정보와 분석능력의 제한으로 형성된 만연한 여론이라는 것도 합리를 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중심리는 지나치게 변덕스러워 일관성을 고이 간직하기 어렵다.
문제해결방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과 발생원인으로 거슬러 가 보아야 한다. 그리고, 정반합, 흑과 백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선행적 합의와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 후에는 기득권, 사익,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 공동가치를 추구함에 있어서 갈래길이면 어떠하고, 포장도로이면 어떠한가. 이미 전제조건과 기반에 있어서 공통적 인식이 합치되었다면 해결방법은 수없이 많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엘리트나 우리 모두가 쉽사리 실행에 옮기지 못 하는 것은 기득권, 사익, 자존심을 내려 놓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축이 제시하는 해결방법에 대해 다른 한 축이 못 마땅하기 마련이다. 한정된 파이를 더 먹으려면 다음 순번의 파이를 줄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문제해결방법은 일도양단이 될 수 밖에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