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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Nov 08. 2019

귀족고시생과 일반고시생

일상의 변론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로스쿨제도만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로 남았다. 로스쿨제도에 대한 폐해나 제도의 취지에 대해서는 훌륭한 분들이, 그리고 여러 매체에서 갑론을박하였고, 여전히 그러는 중이나 빈도는 낮아지고 있는 듯 하다.


일단, 사법고시가 있던 시절로 회귀해서 고시생이었던 당시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귀족고시생, 고시귀족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귀족고시생은 신림동 고시촌에서 값비싼 원룸(풀옵션)에서 생활한다. 대부분 전세로 부모의 돈으로 지불되었다. 그리고, 한 달 생활비만 100만원 이상을 지출한다. 이 역시 부모의 돈으로 지불된다. 여기에 교재비, 학원비까지 더 하면 고시귀족의 월 지출액은 더 높다. 의복도 계절별로 메이커에 좋아 보이는 옷이 여러 벌이다. 


일반고시생들은 월 총 지출액이 100만원 이하이다. 지출액에는 고시식당비용, 교재비, 학원비, 고시원 월세, 의복비 등 모든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신림동 고시촌(특히 신림9동)은 관악산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비탈면이 많다. 고지대로 갈수록 일반 공로나 독서실, 서점, 학원, 식당 등과 멀어지는 반면, 고시원 월세는 10만원 이하인 경우도 있었다. 일반고시생들의 원룸은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3~5평 정도이다. 잘 때는 책상 밑으로 발을 넣어서 자야 한다. 


차이점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대강!

일년에 츄리닝 2~3벌로 살면서 그야말로 몰골이 말이 아닌 사람들은 일반고시생들이다. 귀족고시생들은 머리도 자주하고 옷도 자주 바꿔 입기 때문에 귀티가 난다. 일반고시생들은 남루한 사람들도 있고, 최대한 같은 옷을 자주 세탁해서 청결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시생들은 고시식당을 월정액으로 계산하는데, 아침을 거르는 경우에는 월정액이 부담이라 쿠폰을 사두고 점심과 저녁을 해결한다. 더 싼 식당이 있으면 일반고시생들은 정보를 교환해 그곳으로 몰려간다. 귀족고시생은 고시식당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일반음식점에서 기호에 맞게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 


형편이 어려운 경우 교재도 중고서점을 이용한다. 최대한 덜 본 법서를 사서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워야 한다. 고시귀족은 중고서점에 갈리가 없다. 일반고시생들은 한 달에 한 번 생활비가 집으로부터 지원되는데, "배 들어오는 날"이라고 하며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최대한 저렴하게 술한잔한다. 고시귀족에게 "배가 들어오는 날"이 의미가 없다. 게다가 먼저 합격한 사람들이 신림동에 와서 불쌍한 일반고시생들을 위로해 주는 날이라도 있으면 질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다. 


합격은 귀족과 평민을 따지지 않는다!

고시귀족와 일반고시생들의 삶의 양적 질적 차이에 대해서는 각설하기로 하고, 핵심은 저 위에 있는 표의 가장 하단이다. 고시귀족이든, 배고픈 고시생이든 시험을 잘 봐야 합격한다. 합격여부에 외부요소가 개입할 수 없다. 


문제지, 답안, 펜, 그리고, 자신의 머리. 이것만이 고시합격에 관여하는 요소들이다. 신림동에 낭인들이 많이 있다. 서울대 신입생들은 입학초에 고시촌 쪽으로 가면 이상한 사람들 많다고 선배들로부터 얘기를 듣기도 한다. 사법고시는 신분의 변화를 극도로 일으킨다. 내가 고시공부하던 시절, 결혼선호직업 순위 140몇위쯤에 고시생이 랭크하고 있었는데, 그 근접한 윗순위에 베트남 총각이 랭크되어 있었다. 그런데 합격이후에는 5위권 안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러니 미련을 버리지 못 하고, 나이는 들고, 취직은 어렵거나 매력이 없고 낭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고시는 공정과 공평했다.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낭인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국가가 이를 구제할 책임이 없었다. 그런데, 사법고시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공정과 공평의 가치를 지키려면 희생해야 할 부분도 있는 법이다. 낭인구제, 다양한 분야의 법률가 배출의 기치를 들고 나온 로스쿨 제도를 둘러 보면 사법고시보다 나은 점이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화학전공의 로스쿨출신 변호사도 실무에서는 이혼소송에 열을 올린다. 


법학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책을 후벼파는 변호사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웹툰, 유투브 등 마케팅에 대해 시간과 정력을 다 쏟는다. 나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왜? 변호사 수가 증가하고 사건수임은 전쟁 수준이니까. 변호사의 질적 저하는 가시적이다. 어차피 사법고시때나, 로스쿨때나 될 놈은 된다. 그런데, 사법고시시절에 안 될 놈이 로스쿨에서는 되는 것이 문제다. 사법고시합격자 수가 1,000명으로 증원되던 시절, 기존 법조인들은 법조인의 질적 하락을 지적했다. 


언젠가 변호사를 그만둘 수 밖에 없을 때까지 이 업무를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직종을 변경해야 할지 고민이 든다. 장사꾼이 되려고 머리에 쥐나도록 고시공부한 것이 아닌데, 가끔은 모 회사에 합격해 놓고 걷어차고 시험공부한 것이 잘 한 짓이었는지 후회가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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