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사람이 일정한 깨달음을 얻으면, 인식의 전환, 사고의 창조적 파괴의 계기 등을 경험하게 되면 어떤 결과적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그것은 내적인 여러 변모도 있겠지만,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깨달은 사람에 대해 타인의 평가는 "저 사람이 달라졌어!"라는 변화의 인식의 표현이 수반된다.
보리수 나무 밑에서, 해골바가지로 물을 마셨든, 심각한 실패를 겪었든 간에 사람이 철이 들거나 행동패턴이 변화하고 사고변화가 급격해져 버린 결과적 모습에 대해 스스로도 그렇게 느낄지 모르지만, 타인의 입에서 그 변화의 확인을 확인할 수 있다. 'Something is different'. 사람들이 내가, 내 자신이 달라졌다고 말하거나 그런 시선을 보낸다. 내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든, 부정적으로 망가지든간에 일정한 깨달음, 극심한 실패, 질병, 스트레스 등 어떤 계기로 삶에 송두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해일을 경험하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삶을 살게 되는가!
우리는 성공을 거두거나 그 반대축에 있는 실패를 하게 되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양쪽의 수용적 느낌은 정반대이지만 성공을 거두거나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사고와 사유체계, 행동양식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긍정적 깨달음과 부정적 회의든 간에 사람은 크게 변화의 격정을 맞이한다.
누군가를 만났다. 자신에게 임팩트의 충격적 자극을 제공하는 특정한 인물과의 교류는 삶의 지대한 변화를 일으킨다. 그를 통해 나쁜 길로 빠질수도 있고, 그를 통해 높은 수준의 꿈을 계획하고 행동적 실천을 실행에 옮기는 결단을 손쉽게 할 수도 있다. 누군가와의 만남은 깨달음의 계기가 되고, 삶의 변화를 야기한다. 결국, 특정한 사건과 특정한 인물이 삶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변화시킨다. 스스로 변화할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범상한 우리에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잃다!
접촉과 플러스적 경험이 아니더라도 깨달음을 통해 인생의 변화를 겪게 되는 계기는 수없이 많지만, 공감할 수 있는 계기는 '상실'이다. 자식을 잃고, 부모를 여의고, 가치있는 물건을 잃어버려 보면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건강을 잃을 뻔 하다가 죽음의 경계선에서 극심한 고통의 대가로 수명의 연장을 얻은 경험이 있다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현상들이 참으로 복되고 값지게 느껴진다. 아픈 오른손으로 왼손을 닦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되면 오른손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매하게도 무엇인가를 한시적, 영구적으로 상실할 때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기도와 말씀!
나는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기도와 말씀에 대한 위력을 배웠다. 하지만, 누구나 나약해진 상태에서 영성이 발휘된다. 예수나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초월적인 존재를 가정해 기도를 한다. 고통으로부터의 탈피, 질병의 치유, 간절한 성공에의 기원 등 합리적 이성의 범주에서 벌어질 수 없는 사유와 행동을 하게 된다. 인간은 아마도 본능-이성-영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사람은 이러한 기도와 기원, 그리고 믿든 믿지 않든 영성적 진술, 말씀에 의존하는 그런 행태를 자발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깨달음 후에 벌어진 것일 수도 있고, 그 이전에 발생할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사람이 순식간에 달라질 수 있는 계기는 기도하는 순간이다.
사람은 스스로 특정한 목표와 계획,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수칙에 의해 변화되기 힘들다. 의지력은 그만큼 강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순식간에 변화시킬 수 있고, 변화될 수 밖에 없는 계기와 사건들이 인생에는 수없이 스쳐지나간다. 우리는 그 순간에 느낀 감각, 감정, 사유를 유지해야 한다. 그것은 기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