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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Dec 17. 2019

선행학습의 불가피성 #1 학창시절

일상의 변론

이 이야기를 꺼내면 나의 나이가 가늠이 될 듯 하지만, 예전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연합고사를 치뤄야 했다. 200점 만점이었는데, 나는 191점을 맞은 것으로 기억한다. 전국에 만점자가 몇 명 있었다.


알다시피 연합고사를 치르고 중학교를 졸업해서 고등학교 배정을 받아 입학하기까지는 석달 남짓한 텀이 있다. 나는 당시 대구에 살고 있었다. 본래 태생은 마포 공덕동인데, 아버지의 일 때문에 대구로 이사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중간의 기간동안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살고 있던 동네가 약간 우범지역이라서 동네에 '깡패' 형들도 몇 명 알고 지냈다. 그런데, 이 형들이 드럼통을 개조한 군고구마 구이용 리어카를 이용해 군고구마 장사를 했다.


1992.경에는 소위 '일진' 들이 군고구마 장사를 '밑에 애들'한테 시키곤 하였던 것 같다. 나는 '깡패 형들' 패거리 중 우두머리와 친했다. 그런데, 형을 따라 군고구마 리어카가 있는 길목을 가 보니 '깡패 형들'의 외관에서 나오는 '아오라(?)' 때문에 군고구마 판매율은 매우 저조했다.


아주머니나 퇴근하는 싱글 여성들이 군고구마를 먹고 싶어도 사려고 접근하면 판매자들이 복장이나 머리색, 덩치 등이 싸아했기 때문이다.


우두머리 형이 "소평이! 네가 좀 팔아봐라! 만원줄게!"라고 제안했고, 일종의 영원사원으로 채용(?)되었다. 나는 당시만 해도 또래들 평균키보다 작았고, 얼굴도 곱상(개인적인 평가)하게 생겼기 때문에 "군고구마 사세요!"라고 주기적, 비주기적으로 외치면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시장에서 박스떼기로 생고구마를 사다가 큰 놈은 반으로 자르고, 작은 놈은 그대로 연통비슷하게 생긴 관에 생고구마를 넣은 후 드럼통으로 밀어넣고 잘 구워졌나 확인하면 된다. 다 구워진 것은 불과 거리가 먼 위쪽 연통관으로 옮겨 놓아야 타지 않는다.


매출액과 관계없이 하루에 1만원이라는 큰 돈을 벌게 되자 재미가 났고 이 일에 매진했다. 공부는 안 했다. 삼국지, 초한지 뭐 이런 책들은 간간히 읽었던 것 같다. 겨울이 지나 고등학교 입학시즌이 닥쳐왔다.


당시 뺑뺑이(추첨제)로 고등학교를 배정받았기 때문에 원하는 고등학교를 지원해서 갈 수는 없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한 학년에 900명 가까이 되었다. 학교가 무척 컸기 때문에 16반까지 있었다. 1반에 60명 남짓. 나는 연합고사 성적에 의해 전교 9등으로 입학했다. 공부 잘 하는 놈들이 앞에 8명이나 있다니.


일주일 후 고등학교에서 학력평가 모의고사를 실시했다. 국어, 영어, 수학 단 3과목만 쳤다. 그런 시험을 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리고, 나는 3과목 도무 시간 내에 문제를 다 풀지도 못 했다.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 고등학교가면 학습의 난이도가 큰 격차가 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군고구마 장사에 매달린 나로써는 교과과정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학력평가결과 전교 9등에서 전교105등으로 밀려 났고, 반 1등에서 5등으로 밀려났다. 그 후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 했다. 1~2등 하는 친구들을 보니 성문기본영어, 수학정석 뭐 듣도 보도 못 한 그런 책들을 선행학습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나는 형이 없고, 부모님은 맞벌이라 늘 늦게 귀가하였기 때문에 자식들 공부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선행학습이라는 말이 그때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1학기 내내 1등을 선행학습을 마친 친구들에게 내 주었고, 나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피나는 노력을 해도 성문종합영어, 실력정석을 혼자 다 독파했다. 이해가 안되면 싸그리 일단 외웠다.


1992. 10. 중간고사에서 아마 전교 10등, 반 1등을 탈환했다. 사실 1등을 한 적이 없으니 탈환은 아니지만, 마음 속으로 1등은 내 자리라는 생각을 품었던 듯 하다. 그 후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심히 뿌듯했고 부모님도 기뻐하셨다.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 60만원(1분기 공납금이 15만원이니 1년치 학비다).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 후로는 전교1등을 다시 한 적은 없다. 단지 전교 5등 범위 내에서 늘 순위를 매김했다. 그리고, 1등할 당시처럼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탓도 있다. 한번 했으면 됐지. 안일했을 수도 있고, 계속 그러자면 몸과 정신이 다 타버릴것만 같았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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