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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Dec 18. 2019

선행학습의 불가피성 #2 지금

일상의 변론

선행학습의 불가피성 #1 학창시절 에 이어


아무튼 시간이 흘러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열심히 술마시고 놀았다. 그런데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니 이곳에서조차 선행학습을 통해 연수원 공부를 마치고 온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사법연수원 공부량은 둘째치고 각종 행사가 너무 많아서 공부할 시간이 도통 주어지지 않는다. 선행학습을 마친 동기들에게 상당히 유리한 게임판이었다.


사법고시 성적이 67등이었는데, 성적 다 까먹을 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년차가 끝나니 성적이 150 등 근방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나는 결혼을 했고, 아내가 임신을 했다. 세상에는 성적보다 더 의미있는 일들이 많다.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사법연수원 공부도 중요하지만, 태교학습도 중요하다고 들어서 클래식도 구입하고 태교동화도 샀다. 하지만, 음악은 틀어놓으면 되었고, 태교동화는 한두 아내의 배를 향해 읽어주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모 로펌에 취업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급만 당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고, 판검사나 김앤장, 태평양 등 대형로펌을 가려면 공부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도 하지 않았다. 위궤양을 겪어 가면서 공부하는 동기 후배들을 보면서 '판검사는 너네가 해라'라고 생각하고, 31살인 나는 여유를 가지고 공부했다. 최종 성적은 그래도 갈라치면 지청 정도에 발령받을 수 있는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마감했다. 못 갔을 수도 있고, 간당간당한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현재 지금 나는 변호사로 연명하고 있다. 선행학습은 참으로 반칙같기도 하고, 그들이 근면한 듯 하기도 하다. 그런데, 10세 아들, 6세 딸의 일상을 보면 대부분 선행학습이다. 하지 않으면 나중에 못 따라잡는다는 것이 집사람의 의견이다. 지금 다니는 학원이며, 수업같은 거는 다른 애들에 비하면 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한다. 집사람 의견이다. 아니 조사결과일 것이다.


선행학습. 예습과 복습만 했다는 수석합격자들의 말처럼 예습을 아주 이른 시기까지 당겨서 하면 선행학습이고, 가까운 미래에 배울 것을 미리 공부하면 예습이라고 구분해야 할까. 아무튼 나중에 다 쓸모없는 것들을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는 여전히 가르치고 있다.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불가피하다. 혼자의 힘으로 현실을 바꾸기란 먼지로 바위치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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