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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Dec 27. 2019

착각

일상의 변론

착각을 하지 않으면 한시도 살기 힘들다. 오늘 올려붙인 머리가 외모의 수준을 향상시켰다거나 화장발이 잘 먹어서 피부가 윤기나 보인다거나 옷을 입으니 날씬해 보이고 가슴은 도드라져 보인다거나 신발의 숨은 깔창과 굽이 키가 커보이게 보이게 한다는 등의 착각을 해야만 살기 편하다. 착각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어 자신의 인식에서 머물을 때 우리는 자신감이 생긴다. 적정한 착각은 삶의 활력이자 필수양분인 듯 하다.


그런데, 착각이 외부적, 관계적 차원에서 비롯될 경우에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호감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 일으키는 파문의 한 파장에 의해 심장이 뛰고 감정이 요동치며 그에 더해 호감대상에 대해 신뢰와 사랑의 감정을 가질 때 착각은 분명 독소적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지나가는 말이었을 뿐이고 흔한 인삿말이었는데, 대상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의 모든 몸짓과 말소리가 그 자체 이상의 의미를 상상하게 만들고 내심의 깊은 곳에서 일방적인 감정과 생각을 발아시킨다. 그 싹은 점점 커지게 되고 착각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신 뿐이다. 착각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하지만, 착각의 껍질에서 깨어나리라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리고, 현실로 현실화된다면 착각임을 깨달아 그간의 환상과 상상의 즐거움은 고통으로, 그리고, 자신의 현재 위치를 실감하게 만든다. 


비단, 남녀간의 애정과 호감의 문제만이 아니다. 착각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권력, 지위, 부와 명예,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치적 판단 등에 있어서도 그 영역이 미친다. "너 자신을 알라!". 알면 큰일이다. 부족하고 비천하며 하잘 것없으며, 보잘 것없는 자신을 알게 된다면 그 보다 비참하고 참담한 경험이 있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현상을 좋은 방향으로, 자신에게 호의적인 측면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식은 착각의 유지와 지속이 착각의 파괴로 인한 현실인식보다 덜 고통스럽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려고 한다. 

마녀가 "이 사과 먹어봐! 진짜 맛있어!"라고 하면 공짜로 주는 사과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독을 먹고 왕자나 공주, 그리고, 화타가 나타나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주어 상상 속의 복된 삶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는 환상과 착각은 삶에서 적정하게 필요조건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닌데", "그 때 그 일만 없었다면", "그 때 내가 좀더 노력했더라면". 이런 푸념을 반복하면서 지금의 삶과 모습, 실체는 결코 자초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발생된 어쩔 수 없는 귀결이었다고 착각하며 사는 편이 건강에 이롭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아! 내가 착각했네"라고 할 때 진심으로 착각했을까. 사실은 좀더 구체적이고 신중하게 기억을 회귀시켰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착각이었다고 하면 쉽게 넘어갈 수 있고, 스스로나 타인에게도 관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착각은 때로는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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