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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Jan 05. 2020

나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1 모습

일상의 변론

하루에 거울을 몇 번이나 볼까. 단장하기 전의 모습, 단장하는 과정의 모습, 단장을 마친 모습, 길을 걷다 쇼윈도에 비친 모습은 내 모습임에 틀림없다. 사진이나 동영상이 체포된 모습 또한 내 모습이기는 하지만, 과거 특정 시점의 특정 장소와 상황에서의 모습일 뿐 현재의 내 모습은 아니다.


거울을 보면서 현재의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진정한 내 모습일까. 빛의 입자와 파동이 내 얼굴에 반사되어 다시 거울의 반사면에 튕겨서 망막에 영상이 도달할 때까지 10억분의 1초가 걸린다고 한다. 결국, 현재 거울을 보면서 양치질을 하거나 화장을 하거나 머리에 왁스칠을 동시에 하는 것처럼 착각할 뿐, 현재 보고 있는 거울 속의 모습은 10억분의 1초 전의 모습이다.


우리가 보는 별빛은 몇광년전에 별이 발산한 빛이 지구까지 도달해서 망막에 맺히는 것인데, 결국, 그 별빛을 볼 때는 그 별은 그 자리에 없다. 존재하지 않는 별빛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별은 존재한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같은 영화를 보고 있더라도 그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풍경이 개별 망막마다 다르게 맺힌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엘사'고 누가 '울라프'인지 동의하고 영화감상을 토론할 수 있다. 우리 눈은 빛에 반사된 물체를 인식하되 그에 관한 보정작업은 뇌가 종합적으로 작업을 해서 알려주는 신호에 의한 것이다. 대체로 평균값, 근사값인 셈이다.


'나'는 내가 거울을 볼 때도 '나'가 아니다. 명백하게 시간차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마주대할 때도 현재의 '나'의 모습이 아닌 것이고, 10억분의 1초이상 지난 과거의 모습이고, 그것도 뇌가 대체로 그러한 모습이라고 수정작업을 거친 후의 영상이다.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분명이 외적 모습도 정의의 요소일 것이 분명하다. 신장, 체중, 생김새, 그리고, 성격 등 복합적인 많은 부분집합들로 '나'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변화하고 있다. 생각은 물론이고 모습 역시 그렇다. 그 차이가 아주 미세한 시간차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인식하지 못 할 뿐이고 게다가 이런 점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대범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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