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과하지욕(胯下之辱)이라하면 선뜻 무슨 의미인지 캐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과(胯)는 사타구니, 가랑이 등을 의미한다. 사타구니나 가랑이 아래로 가는(갈 지之) 치욕(욕될 욕辱)을 의미한다. 남의 가랑이 아래로 기어들어가 나오게 되는 치욕을 의미한다.
한신이 늘 칼을 차고 다니면서 빨래터에서 아줌마에게 밥을 얻어먹고 사람구실을 못 하는 시절에 시장판에서 동네 깡패(왈패)를 만나 "너는 칼을 쓰지도 못 하면서 칼을 차고 다니느냐! 칼을 쓰지 못 할 것이라면 나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라!"라고 하자, 한신은 머뭇거림없이 칼을 뽑아 그들의 목을 베기는 커녕 동네 깡패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목숨을 보존한다.
과하지욕이란 잠시의 분함과 치욕을 참아 장차 큰 일을 이루는데 있어서 허물을 남기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실제 한신은 초나라 항량(항우의 작은 아버지)에게 유세하였으나 말단 공무원에 배치되고 범증(항량, 항우의 책사)이 한신을 중용하지 않으면 차라리 죽여야 한다는 간언을 항량도 항우도 무시한다. 한신이 빌어먹고 기어다닌 사실에만 집중하고 그가 품은 깊은 내면에 대해 관찰하려는 수고를 더 하지 못 했기 때문에 결국 한신에 의해 항우는 천자의 자리를 내 놓아야 했다.
사기 본기 항우본기나 초한지 등에서 한신은 유방에게 귀의하여 숱한 공을 세워 결국 항우를 사면초가에 빠뜨려 자결하게 만든다. 유방이 황제가 되고 나서 한신은 빨래터에서 밥을 주었던 아줌마에게 상을 내리고, 가랑이를 벌렸던 깡패를 찾아내어 관직을 내린다. "그대들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라고 말한다.
만약 한신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지 않고 칼을 뽑아 왈패들을 베었다면 당시 엄격한 진나라 법에 의해 전과자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사형을 면치 못 했을 줄 모른다. 분노와 치욕은 이성을 잃게 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한신은 그 순간을 참아냈다. 위인과 범인의 차이가 이에 있을 것이다.
스피디한 사회를 살면서 스마트폰이 늦게 터져도 갑자기 짜증이 나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속도가 느리고 반응이 느린 것에 대해 긴 인내를 발휘하지 못 하는 사회가 되었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탄탄하게 다져져 있지 않기 때문에 남들이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분기탱천하여 일(?)을 저지르고 만다.
아버지가 잔소리하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친구가 한 소리하면 화를 이기지 못 해 그의 목숨을 빼앗는다. 층간소음이 거슬린다며 사람을 해친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점원을 살해한다. 비판적인 견해를 들으면 비난으로 여겨 막말로 반격한다. 비록 사람의 목숨을 해치지는 않았더라도 상대의 인격을 살해함으로써 자신의 인격마져 살해하는 세상이다.
막대기를 걸쳐 놓고 허리를 뒤로 젖혀 막대를 떨어뜨리지 않고 지나가는 림보라는 게임이 있다. 성공할수록 막대의 높이는 낮아지고 허리는 더 아래로 젖혀야 한다. 본래 림보는 그러한 형태의 춤이였다고 한다. 가랑이를 기어가려면 네 발이 되어야 하고, 둔부를 보여야 하나, 림보는 그 반대의 경우이기 때문에 성기가 부각된다. 어떤 경우이든 부끄러운 자세에 해당한다. 하지만, 하나는 치욕스럽고, 하나는 춤사위이다. 그런데, 림보는 그 상태와 진행상황이 불안정해서 어떤 결정을 기다리는 불확실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분노조절장애, 충동조절장애는 병적 상태이다. 이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우리들 중 대부분이 분노와 잠깐의 치욕을 견디지 못 한다. 이것은 자존심과 자존감이 상당히 감소된 사회적 현상이다. 그리고, 빠른 반응에 대한 기대, 관심에 대한 조급함도 한몫한다.
분노가 가시고, 충동이 가라앉으면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에 대해 후회한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다시는 회귀할 수 없다. 화가 나면, 자존심이 상하면, 분노가 치밀면 한신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고 권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 화가 치미는 순간에 고매한 인내를 발휘해야지라고 노력하기 보다는 단순히 7초만 숨을 길게 내쉬어라. 7초 정도 날숨을 내쉬어 보라. 쉽지 않다. 7초는 길다. 그리고 나서 하고 싶은데로 행동하더라도 나무라지 않겠다. 단지 7초이다. 분노를 극복해야, 잠깐의 치욕을 지혜롭게 견뎌야 훗날 복된 삶을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