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우리는 지난 역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형태는 달라도 역사는 반복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이 제품이 달라질 뿐, 본질은 달라짐이 없다는 의미이다. 나는 온고지신을 신뢰한다. 옛것, 부모님의 삶을 관찰하지 않고서 내 삶과 미래가 달라질 수 없다.
반성하고 고칠 것이 있을 것이고, 답습하고 모방할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옛것은 시대착오이며, 고루하고 답답하다고 여긴다면 아직 미성숙한 인격이라고 자부한다.
나는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엄마를 때리고 밥상을 뒤엎는 일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가족을 때려서는 안되고, 힘들어도 가족과 논쟁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밥상을 뒤엎는 일 따위로 나의 권위를 세우는 일 따위는 하지 않기로 말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는 언제인가. 나의 부족함이 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나의 무식함을 명쾌하게 일깨워줄 때 그 사람에 대한 존경과 존중, 충성심이 생긴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존중과 존경을 받지 못 하는 인물일까. 왜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고 폄하당하는 것일까. 그건 역사와 삶의 이치에 대한 진지한 학습과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저 주어지는 상황과 나태와 욕구에 의해 살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훌륭한 인물들의 훌륭함은 지속적인 자기단속과 학습, 그리고, 현재의 욕구충족보다 먼 미래의 발전된 상황을 꿈꾸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노력에서 비롯된다. 그 사실은 역사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yolo 의미있다. 소확행 의미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즐겁고, 즐기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하지만, 발전은 인내와 절제 속에서, 역사에서 터득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나치면 기울고, 양이 달하면 음이 되고, 음이 차면 양이 된다.
순환이 인생의 본질이다. 그 순환을 이해하고 순응하며 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지혜를 구비하려고 하는 것이 인생의, 필생의 과제이다. 우리는 너무나 과거를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스마트폰이 삐삐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과거는 추억일 뿐이고, 미래는 현실이 다가갈 삶이라고 생각한다.
온고지신. 그리고, 창작과 변형, 응용과 반추는 역사의 순환 속에서 깨달을 수 있다. 젊은 후배들이 옛것을 꼰대라고 치부하고, 늙은 세대는 젊은이들이 소양이 없다고 반문한다. 이래서는 국가가 통합될 수 없다.
조화와 순응, 융합과 합의.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는 좌파, 우파의 되지도 않는 협상이 아니라 바로 부모세대와의 합의이다.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에게서 배울 점 하나는 최소한 있다. 왜냐하면 나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토론과 협상, 그리고, 수용과 인정,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토양이고 양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