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tter life

천칭의 지레 #기저사고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사람이 균형감을 유지하기란 어렵다는 깨달음을 나이가 들수록 깨달아 간다. 내가 하는 일 자체가 어느 한 편에 서서 상대방 주장의 빈 공간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야 한다. 하지만, 레퍼리(판사)가 있기 때문에 나의 편면적이고 편향된 주장은 옳다고 인정되던가, 그릇되다고 판단을 받는다.


그런데, 사회생활은 판단자가 없기 때문에 고독한 노력을 해야 한다.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등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세상 모든 현상과 사건, 사고에는 다른 이면이 있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찰과 논증으로 각자가 판단자가 되어야 한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고독한 과정이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 것인지, 또는 누구의 주장이 허위인지에 대해 고독한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고독한 기준은 어떻게 정립되는가? 아니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가? 정답은 없다. 다만, 언론은 신뢰할 수 있는가? 유튜브나 각종 포털에 쏟아지는 정보들은 신뢰할 수 있는가? 하나의 기저사고를 가지고 보면 명백해지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편향된 기저사고, 그리고 고독한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다른 측면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맹점에 빠지게 된다.


결국, 혼란에 빠지는 것은 현상을 균형감 있게 바라보고 해석하려고 노력하려는 사람들 뿐이다. 한 쪽 기저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면 저 반대쪽의 폐해가 명백하게 보이는 듯 하고, 장점은 아예 가시적으로 수용되지도 않는다.


사고의 경화는 놀랍도록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가치관, 세계관으로 자리잡아 토론의 여지를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유익한 주장도 조건없이 싫은 상대가 내뱉으면 그 주장 자체 마저도 싫어지는 법이다.


균형감을 가지고 세상을 관망만 하면 회색분자이고,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해도 회색분자이다. 중도는 수수방관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중도는 실용적인 중용을 가치로 섣불리 편향되지 않고, 고독한 논증의 과정을 애써 하려는 부류이다.


다만, 중도 역시 어느 순간에는 어느 한 쪽으로 표를 던져야 한다. 나름의 판단에 의해 그나마 더 나은 쪽, 발전적 성향과 동력이 있는 쪽에 표를 던져야 할 순간이 온다. 우리는 지금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조를 내려놓고 상황을 여러 경로에 의해 취합한 정보로 각자 판단해야 한다. 그 판단이 옳다는 보장도 없다.


언론, 유튜브, 포털 등에서 얻는 정보가 고작이라 정보의 취득경로에 따라 판단결과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은 너나 없이 한다. 그렇다면 정확한 정보전달과 공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고 민심을 거스르는 군주는 국가를 망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모자라 생선회로 전달되어야 할 정보를 알려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오히려 민심인 천심을 조작하는 것이 정권을 취득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 국민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은 결국 자기 주장에 따르라는 말 이외의 수준 이상은 아니다.


선호와 기호는 자유의 영역이지만, 판단은 구속의 영역이다. 진정한 정보와 사실을 찾아 이를 그 범위 내에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제한이 따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기저사고를 내려놓고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 현상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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