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칭의 지레 #역사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역사공부는 하는 일과 관계없이 꾸준히 해야 한다. DNA에 역사적 오류와 성공의 내용이 포함되어 유전되지 않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 현실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역사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변하지 않는 과거의 이벤트이다. 다만, 관점과 해석의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따라 역사적 사건의 판단은 상당한 차이가 난다. 게다가 역사적 사건을 현대적 해석에 유리하게 짜맞추기를 해서 이용하기도 한다.


역사에는 선과 악이 없다!

어릴 적에 이순신 장군은 선이고 원균과 선조, 선조 주변인물들은 악하다라고 생각했다. 누가 나쁘고, 누가 잘 했고를 따지려고 역사를 바라보면 도움될 것이 없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선과 악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해석할 때 우리는 역사로부터 추출해 낼 액기스를 얻지 못 한다.


'WHY'. 왜 이러저러한 역사적 사실이 발생했고, 그 결과는 어떠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인과적 경험과 간접지식을 탐구해야 한다.


정권취득-숙청(명목이 적폐청산이든, 사정이든 간에)의 구도가 근대사, 현대사인 듯 하다. 당연지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권친화적인 인사들로 각종 요직과 각종 공사사장, 언론사사장, 돈되는 여러 곳에 대표자를 물갈이한다. 지난 정권은 악하고 나쁜 부류이고, 현재 정권은 선하고 발전적 부류라고 하는 이분법적인 관점, 즉, 역사를 선과 악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이에 더해 비주류일 때 받은 서러움과 치욕을 되갚아 주고 싶은 사적 욕망을 불태우기 때문에 우리의 근대와 현대는 발전이 없는 것이다.


역사의 해석이 이러하니 현재는 물론이거니와 다가올 미래가 가히 희망적일 수 없는 이유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정권자에게는 매우 불편한(?) 프로세스이고 가치이다. 반대를 무릅써야 하고, 저항을 회유해야 한다. 정권자에게는 분명 A답안이 옳은데 반대는 그렇지 않다고 비협조적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집정관들에게는 불편하고, 반대세력에게는 비협조와 저항의 근거가 된다.


칼자루를 쥐었으니 마음껏 휘두르고 싶은데, 칼을 넣었다 빼었다 하는 형국이니 민주주의가 정권을 취득하는 과정에서는 참 좋은 것이었는데, 정책을 펼치려니 걸림돌로 느껴진다.


여기서 역사의 가르침을 찾아야 한다. 겸허히 비판과 반대를 듣고 인내와 절충의 결과가 덜 저항적이고, 점진적인 행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집권세력이나 반대세력이나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것이 각자의 목표라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방법론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극명한 차이가 나면 싸움나는 것이고,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노력과 가능성이 있다면 일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70을 얻기 위해 100을 주장하다가 30을 양보하고, 70에서 덜 주기 위해 50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60쯤에서 조정을 해야 한다. 외관상 양측이 40을 양보한 듯 하지만, 반대해석상 60을 얻은 결과가 아닌가.


바람직한 의사결정은 역사에서 터득되어야 한다. 일방적인 것은 결국 강한 저항에 의해 사라졌고, 포용적인 것은 후대에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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