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차이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동물은 비이성적이고 본능적이라고 구별할 수 없다. 동물도 나름의 경험과 규칙이 있고 나름의 조직과 조직논리라는 것이 있다. 혈혈단신으로 다니는 호랑이와 같은 동물은 조직적이지 않기 때문에 제 나름의 뜻대로 먹고 살겠지만, 대부분 무리를 짓는 동물들은 역시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고릴라는 DNA에 있어서 2개 차이 밖에 없다. 아마 고릴라, 침팬지가 인간보다 DNA가 2개 더 많다.


인간 역시 동물적 속성(폭력성, 성적 욕망, 식욕 등)을 함유하고 있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문화적 테두리 속에서 동물과 사고력의 차이에서 구별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깊은 사고를 하고,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동물과 다르다. 명백하게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여러 요소에 의해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개인적으로 구별기준을 추가하자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미래예측성과 그에 대한 현재의 준비노력에 있다고 본다. 동물은 배가 부를 때까지 피포식자자를 먹어 치운다. 도토리를 저장하는 다람쥐, 꿀을 저장하는 벌, 여러 잔해를 모으는 개미도 있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미래를 예측해서 현재에 대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기해 현재에 대응한다.


인간은 절제력을 가지고 있고, 동물은 대체로 절제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부모세대는 당장이 아닌 10년, 20년 후를 위해 절제할 줄 알았다. 그래서 자녀세대를 더욱 안정적으로 부양하고, 자신들의 노후를 지켜내려고 했다. 내가 아는 한 우리 어머니는 '티백'을 여러 차례 우려 드셨고, 물티슈도 사용한 후 세척하여 말린 후 바닥을 닦는데 쓰고 계신다. 나는 청승맞다고 핀잔을 하지만, 우리 부모세대는 그렇게 미래를 위해 현재를 준비했다.


문화적 기조와 기류가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20~30대의 경우 최대한 부모로부터 자원을 지원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미래에 대한 예측을 위해 현재에 대응하기 보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YOLO를 추구한다. 소확행이나 YOLO의 의미가 왜곡되지 않았나 한다. 인생이 한 번 뿐이니 가치있는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매진하라는 의미일텐데, 일단 적당히 일하고 해외여행은 기본이고, 당장의 만족과 포만감을 추구한다. 물론, 젊은이들이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다.


젊은 세대가 이같은 문화적 기조를 따르는 것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한몫했다. 취업이 어렵고, 자력으로 결혼해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힘든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젊은 세대로 하여금 현재적 만족을 부추기고, 미래예측을 유보하게 만들었다. 이는 분명히 기성세대의 잘못이고, 패착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 차이 중 하나는 미래예측성과 현재 대응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수학이 어렵다 해서 수포자, 취업과 결혼, 자가마련 등을 포기하였다고 하여 삼포세대라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유행했었다. 지금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사용빈도가 예전보다는 확연히 줄어 들었다.


그런데, 수학을 이해하기 위해 끈질기게 시간을 두고 매달려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해가 될 때까지 생각하고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취업, 결혼, 자가마련 등에 관한 미래예측 전망이 어둡다 해서 소비를 절제하고 해외 여행을 삼가하고 저축하고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비단 우리 젊은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의 젊은이들, 특히 일본의 젊은이들 또한 현재를 포만하게 미래는 다가올 상황일 뿐, 미래의 가치를 현재에 끌어다 소비하는데 많은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


인생은 짧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길다. 미래예측은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고, 이성과 합리에 의해서만 어느 정도 가능하다. 현재의 포만은 동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다. 나는 마흔 중반이 되었다. 어느덧. 하지만, 미래는 될되로 되라는 식으로 방관하고, 현재의 포만을 미래로 유보하는 것을 기피한다면 진정으로 밝은 미래는 현실화되기 어렵다.


나 또한 하얗게 불태우며 술마시고 춤춘 다음 날, 속쓰림과 과한 카드값을 확인하며 일말의 후회를 해 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몇번씩이나 이같은 삶이 반복되니 두렵기 시작했고,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실적 대응을 하기 위해 '하얗게 불태우는 짓'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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