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유혹하도록 시스템화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번식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하는 남성이나 여성, 원치 않는 남성이나 여성과의 교접은 선호되거나 기피되기도 한다. 번식을 위해서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할 유전자를 가진 이성의 보완 유전자가 필요하다는 본능 때문에 성적 본능이 그러한 방향으로 인간을 동물화한다.
부산시장의 부하직원 성추행, 도지사의 위력에 의한 간음,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의 성폭행, 스승의 제자에 대한 성폭행, N번방에 의한 광범위한 성폭행과 강요 등은 왜 발생하는가라는 문제를 생각하면 복잡다기한 원인이 있을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유를 거시하고 싶다. 우리는 늘 이중적으로 살아간다.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자아와 고삐풀린 개인적인 자아로서의 삶이 그것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아는 해당 지위, 직무, 역할에 의해서 싫든 좋든 가식으로 가장되기 마련이다. 시장으로서의 위엄과 권위의 유지, 최고 지도자로서의 최고의 도덕감을 실천하는 인격체, 스승으로서의 전수라는 위력적인 작업 등 의식적으로 그런 지위, 직무, 역할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면서 힘겹게 살아간다. 물론, 상당한 소양으로 가식없이 내외가 거의 일치하는 인격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자아로 돌아오면 음란함을 추구하기도 하고, 여비서의 젖가슴을 맛보고 싶을 수도 있고, 섹스를 하고 싶을 수도 있으며, 자기에게 비난하는 일반 시민을 향해 욕을 퍼붓고 싶은 욕구도 있을 수 있다. 가령 어떤 도지사는 보기와는 달리 개인적인 자아에서 엄청난 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적인 것으로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이 개인적인 영역에서 해방되다 보니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닌 행동을 하게 된다. 모 검찰 지청장은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기도 해서 옷을 두번이나 벗어야 했다.
게다가 문제는 인간이 사회적 지위와 역할, 그리고, 권위와 권력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주어진 외부적 결과임에도 스스로를 그러한 파워의 주인이자 파워 자체로 일체화시킨다. 나는 국민들이 선택한 한시적인 대통령이지만, 대통령의 권력 자체와 자신을 일체화시킨다. 반쯤은 신격화되어 나는 일정한 수준을 넘어 타인을 지배하더라도 정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직원, 여동료의 엉덩이와 가슴을 주물러도 나는 그럴 권위의 주인이자, 상대는 나의 권위와 권력에 복종해야 할 뿐인 객체로 생각하는 수준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성폭행과 성추행은 일어난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권력과 권위, 사회적 지위, 경제적 소득수준으로 어떤 이성을 접촉할 수 없기 때문에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해 상대의 정절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다(특히,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 빈곤한 권위를 가진 사람일수록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성의 정절을 빼앗을 가능성이 높다). 남자에게도 정절은 있고, 요즈음은 남자들도 성폭행을 당한다는 사실은 여성에 비해 크게 부각되지 않는 듯 하다.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걸맞는 행태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 욕망과 욕구는 억압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제가능한 수준에서는 성폭행이나 성추행이 일어나지 않지만, 개인적인 욕망의 창고가 가득차 넘치고 가식을 유지할 에너지가 고갈되면 더이상 억압으로 억제할 수 없는 순간에 손이 이성의 엉덩이나 가슴에 가 닿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빈곤한 지위,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상대를 조종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가 조종당할 수 밖에 없는 상태를 불법적으로 만든다. 더 이상 나는 빈곤한 사람이 아니며 상대를 폭행하고 억압해서 조종하는 반쯤 신적인 존재가 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멋진 남성, 멋진 여성을 스칠 때 멋지다라는 느낌으로 눈을 흘길 뿐이지만, 그 멋짐에 대해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다는 지위와 권위를 자신이 그 자체인 것으로 착각할 때, 반대로 결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 멋진 상대를 가질 수 없다고 평가할 때 성적 불법행위가 발생하는 것이다.
성공한 지위와 쪼다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이성을 차지하는 방법을 행사한다. 어느 경우에나 당하는 쪽에서는 상처를 입게 되겠지만, 문제는 인간이 두 가지 역할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회시스템도 한 몫한다고 생각한다. 외관상 자아와 사생활적 자아간의 괴리가 커질수록 범죄는 줄어들기는 커녕 암암리에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