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군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다면 알 수 있는 사실 중 하나가 '너무 잘 해서도 너무 못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선임들이 시키는 일을 너무 잘 하면 일을 도맡아 하게 되고, 못 하면 '고문관' 취급을 하며 핀잔과 가학에 가까운 비교대상 중 비교열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단체로 해야 하는 모든 활동에서 균형이 중요할 경우, 너무 잘 하면 조화를 깨뜨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잘 하려고, 그래서 잘 보이려고 애를 쓰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르크스가 존경했다고 하는 소설가 '발자크'의 "알려지지 않은 걸작"에 어느 화가의 대한 묘사가 있다.
"재능 넘치는 화가가 머릿 속에 있는 장면을 현출하기 위해서 그림을 반복해서 그린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그림을 고친다. 결국 캔버스의 형체를 알 수 없을만큼 물감 천지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그 그림이 자신의 머릿 속에 있던 장면을 완벽하게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위 화가는 소설 속 가공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완벽한 재현을 한답시고 온갖 물감만 덫칠하기를 수없이 했다. 그의 눈에만 완벽한 재현일 뿐이고, 남들에게는 덫칠한 물감 덩어리일 뿐인데도 편견에 사로잡혀 "훌륭하다"라고 착각과 환각에 빠지고 만 것이다.
"무엇인가를 잘 한다는 것", "무엇인가를 잘 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기본바탕에는 타인과의 비교가 깔려 있다. 잘 하고 못 하고는 비교대상이 있어야 평가기준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물론, 비교대상이 없이 누군가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선사했다고 하더라도 만족감을 드러내는 그 상대방에게는 분명 비교대상이 있기 때문에 특정개인의 일의 성과에 대해 호평이나 혹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잘 하려고 애쓰는 것"은 결국 경쟁적 우위를 차지하고, 자신에 대한 고평가나 타인으로부터 신뢰와 만족을 통해 다양한 의도와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된다. 순수하게 근면하고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애"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들어가고 피로도가 쌓이는 과정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타인의 평가에만 의존해서 삶을 살아가면 "애"를 쓰고 피곤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더 높은 지위와 명성, 부를 얻는데 좀더 거리를 좁힐 수 있겠지만, "너무 잘 하려고 애"를 쓰면 개인적 삶에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칠 수 있다. 건강, 가족애, 꿈 등 개인별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너무 잘 하려고 애를 쓰는 중이라면 종종 쉬어가는 페이지를 둘 필요가 있다.
"계속해서 애"를 쓰면 우리는 편견과 착각에 빠져 버린 발자크의 화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