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가끔 글을 쓰다 보면 오탈자도 신경쓰이지만, 맞춤법도 신경쓰인다. 그런데, 띄워쓰기는 더 신경이 쓰이고, 어떻게 띄어쓰기를 해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띄워쓰기는 글자간 거리를 두고, 단어를 분리해 내는 일이다. 띄어쓰기 때문에 글을 읽을 때 호흡을 고를 수 있고, 의미가 명확하게 수용된다.

그런데, 고대문장들을 보면 띄어쓰기를 발견할 수 없다. 띄어쓰기용 문자라는 것이 별도 존재했었을까. 한문에도 띄워쓰기가 없다. 해석이 난해해진다. 어떤 단어를 앞 단어에 부쳐야 할지, 아니면 뒤에 오는 단어에 부쳐야 할지 우선적인 고민이 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석이 달라진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띄어쓰기 때문에 작가들이 수고를 덜고 원고료를 더 받을 수 있다며 세종대왕님께 감사드려야 한다는 문장을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띄어쓰기는 여백과 공간이 한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만큼 공간을 소유한다.


"없는데 있다". 띄어쓰기 본질은 "무"인데 "유"인 셈이다. 그런데, 그 부존재의 존재는 실로 값어치가 상당하다. 띄어쓰기의 부재나 잘못 사용될 경우, 전체적 의미의 훼손은 물론 오해를 야기할 수도 있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띄워쓰기는 공간을 차지하는 글자만큼 가치가 있다. 없음이 있음이고, 부존재가 존재이며, 호흡의 단락이 호흡의 연속이다. 띄어쓰기가 확장되면 문단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눈의 피로가 감소하고, 문맥을 짚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 인생에도 띄어쓰기의 오묘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무엇인가를 계속하는 것이 불안감을 덜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백과 공간이 삶에 적정한 위치를 차지할 때, 인생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지고, 해석의 다양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양성은 다른 측면에서 모호함이다. 내 인생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은 모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띄어지는 순간이 있어야 내 인생의 모호함을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고, 지향할 곳을 명확하게 가시권에 둘 수 있다. 띄어쓰기가 참으로 절실한 필요를 요구하듯이 삶에도 띄워야 하는 순간들을 적절하게 배분해 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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