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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Nov 23. 2022

느슨한 인간과 정상 이하의 인간

일상의 변론

사회주의자들은 정부의 변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자본가를 지원하다가 발을 빼고, 노동자를 지원하다가 노동조합을 지원한다. 실제 사회주의의 실현은 권위주의적 수단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폭력과 선동, 전쟁으로 사회주의가 나타났었다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패배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주의가 자유주의와 결합할 수 없는 개념은 아니지만, 사회주의는 부르주아지나 엘리트 집단에 대한 한없는 양보를 강압적으로 받아내야 되기 때문에 자유주의의 훼손은 불가피하다. 


사회주의는 느슨하게 일하는 인간과 정상 이하의 인간들까지 먹여 살리기 위해 국가의 채무를 한없이 늘리거나 부자라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선 이상의 인간들에게서 일정한 사유재산을 보장하지 않는 형태로 사회적 결합을 추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한다기 보다 권위적인 규율에 의해 그렇게 실행한다. 그리고, 반론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를 내세운다. 


사회주의의 본질은, 쉽게 말하자면 토론없이 권위주의적 존재들이 강압적인 규율을 통해 사회를 평준화하고, 사유재산을 보장하지 않으며 개별적인 인간의 구체적 특성을 무시하고, 인민이라는 한 덩어리로 간주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방금 전에 경험했다. 모두가 100만원 짜리 인민이 되었다. 

사회주의에서 국가는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다른 통제장치가 더 중요하다. 그것이 다수당이 될 수도 있고, 일정한 행정부서가 될 수도 있다. 느슨하게 일하는 인간, 정상이하, 평균이하의 인간과 고도의 지능과 재능을 가진 인간이 한 통속으로 분류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 대해서는 호혜적 혜택을 부여해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할 뿐이지, 결코 같은 지위를 부여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월 300만원 버는데, 느슨하게 일하는 인간과 같이 100만원만 받게 된다면 당신은 아마도 분노할 것이다. 


사회주의 옹호론자들은 이와 같은 지적과 예시가 자본주의에 너무 찌들어서 사회주의 본질을 왜곡한다고 비난한다. 사람은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일차적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부득이한 경우, 국가가 일정하게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해방이후 사회적 합의였고, 여전히 그렇다. 


그런데, 최악의 문제점은 사회주의를 관철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고난도 도덕성과 윤리성이 구비되어 있는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지, 견제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문제다. 나랏돈, 결국, 세금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들의 돈을 마치 정치적 선양인듯 마구 풀어대는 정부가 사회주의가 실현하고자 하는 배부른 돼지를 만들어 지지도를 이끌어 내고자 한다. 말이야 경제부양이니 하지만, K방역의 핵심은 자영업자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의 파산을 외면하고 확진자 수치를 줄이는 것에 있다. 다른 나라를 보면, 위험성을 감수하더라도 경제운영 체제를 봉쇄에서 개방으로 열었다. 하루 2만명씩 확진자가 속출하는 러시아나 남미에서도 경제적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 K방역 따위는 본받지 않는다. 


온갖 언론에서, 그리고, 정치권의 압력 하에 K방역이 세계최고인 것처럼 해서 경제시스템은 정지시켜 놓고서, 그 이면에는 코로나의 전염을 방지하겠다는 미명 하에 자영업자들을 파산에 이르게 하고, 산업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K방역의 실체는 그런 것이다(의료진의 노고와 일반 국민들의 절제는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정부, 지자체가 하는 행태의 실체). 그리고, 정권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막대한 국가채무와 세금을 풀어댄다. 거기에는 수혜자가 느슨한 인간들과 평균이하, 정상 이하의 인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과거 폭력적인 사회화 수단의 실패를 이제는 돈으로, 그리고, 경제갱생의 제목 하에 마구 사회주의적 실험을 하고 있다. 전염율에 비해 치사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코로나에 대한 공포를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역사적 유례없는 최고 다수당이 되었다. 그것이 사회주의 권위적 실체라면 이 나라에 미래는 암담하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에 대해 그렇게 심각한 통제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치사율이 높지 않은 전염병으로 인해 기본적인 이즘과 가치, 시스템을 붕괴시켜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들쭉날쭉 하기는 하지만, 일부는 그의 견해가 옳다.


기본소득, 구제금융 등을 한번 지급했을 때, 아마 대다수의 수급자들은 감사함을 가질 것이지만, 나중에 그것에 대해 권리의식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본성에도 관성은 작용한다. 돈을 주다가 안 주면 달라는 권리가 침해당한 것처럼 권리의식이 발생한다. 느슨한 인간과 정상 이하의 인간들은 이제 사회적 기여, 경제활동 없이도 돈 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학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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