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스트레스는 대내적 요인과 대외적 요인 중 어느 하나에 의하거나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불쾌하고 짜증나며 분노 섞인 상태로 정신적, 신체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모호한 개념의 심인, 대상, 환경이다. 문제는 현대인들이 스트레스를 쌓아두기만 하고, 그것이 분노의 수준으로 본래 자신의 실상을 상실케할만큼 행동으로 옮겨져서 타인의 재산, 신체, 생명에 가공할만한 피해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99도에서 1도만 쌓이면 물이 끓어넘치듯 우리는 우리의 스트레스 적재능력을 스스로 가늠하기 어렵고, 발화점에서 크고 작은 스트레스 한 조각이 더해지면 분노의 퍼즐은 완성되어 이성을 초과하게 된다. 그리고는, 부모든, 자식이든, 생면부지의 사람이든 폭력을 가하고, 삶을 빼앗고, 타인의 재산을 손괴하고, 본래적 실상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행위를 함으로써 개별 인생을 망치기까지 한다. 그리고서는 후회하면서 조현병, 우울증 등을 겪고 있다면서 도덕적 비난은 차치하고 법적 책임을 덜고자 한다.
정치적 편향으로 이분화된 사회,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마련에 무능한 정부, 검찰개혁, 반일, 악의 축인 북한에 대한 원조, 실직, 파산, 상류층의 부정부패 등으로 틀에 박힌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찾고자 노력함에도 뚜렷하게 만족감을 찾을 수 없고,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가 분노로 변화할 일만 생기는 지금 이 순간.
정당한 분노라면 대다수가 비난과 경멸의 대상 및 상황에 대해 그 분노에 대해 공감할 것이지만, 분노의 동기와 이유가 설득력이 없고, 분노의 표출이 아무 책임없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것에는 다른 다수에게 또 다른 분노를 야기한다. 마스크 때문에 폭행하고, 용돈 안 준다고 살해하고, 자기 말 안듣는다고 연일 권력을 행사하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폭행하고, 그 결과는 과연 자신에게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결국, 법적 처벌과 손해배상책임일 뿐이고, 친구와 이웃과 가족, 그리고, 다른 다수로부터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 될 뿐이다.
스트레스, 그것이 충분히 쌓여 분노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세밀하게 돌봐야 하고, 만약, 분노가 표출되더라도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식으로 표출해서는 안된다. 결국, 신세망치는 것은 분노의 소유자일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