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해 주는 것
어린 시절 아버지의 너무 이른 경제적 파산으로 1년에 한번씩 이사를 해야 했다. 급기야 지하 단칸방까지, 꿉꿉함과 빛이 세어들지 않는 지상 아래의 공간으로 다섯 가족이 온기로 결합할 수 밖에 없는 생활터전에 대한 굴복상태까지 이르렀다.
하교하고 귀가하면 일수쟁이, 채권자들이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는 날들이 많았고, 죄인처럼 고개만 떨구던 부모님의 곁에서 떨어져 한쪽 귀퉁이에 밥상을 펴고 숙제를 해야 하는 날들도 많았다. 가난은 진부한 소재이지만 고통은 개별구체적이다. 대학에 들어가고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되기까지 가난은 가족의 숙제였고, 발목잡는 무형의 굴레였으며, 내면의 우울감을 짙게 형성하는 매우 불편한 진실이었다.
아버지의 갱생능력과 의지는 술에 의해 망가져 갔고, 당신은 채소장사부터 인형눈알붙이기, 봉투 붙이기, 우산살에 천 꼬매기, 밤깎기 등 닥치는데로 일을 했다. 파출부가 되어 비교적 안정적 직장을 얻게 되자, 부자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맛 볼 수도 있었다. 당신이 돌아오기까지 동생들을 돌보는 것은 첫째 아이의 숙명처럼 전적인 내 몫의 할당량이었는데, 그때는 숙명이라는 개념과 의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었다.
누구나 인생의 전환. 사고의 타격을 맞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삶의 태도와 관조의 관점이 달라지는 사건을 경험한다. 중학교 2학년. 당신이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 파출부의 직장으로 찾아갔다. 부루주아지의 타운은 깔끔하고 깨끗했다. 파출부의 직장에는 치매노인이 있었는데, 그 치매노인이 당신의 퇴근 무렵 배변을 하고, 벽에 회칠을 하는 바람에 속옷빨고, 청소를 하는 등 초과근무수당없이 파출부의 역할을 하느라 퇴근이 늦은 이유를 목격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면깊이 차오르는 울분과 슬픔, 그리고, 우울. 의지와 무관하게 충혈된 눈. 파출부의 본질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실상을 보니 참담했다. 당신은 같이 집에 가자고 했지만, 충혈된 눈을 보이기 싫어서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의 가난은 나와 무관하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은 현실이 아니었다. 그 순간이 사고의 타격이었다. 당신과 함께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네꾸다이메고, 펜대 굴리면서 일하는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중학생이 돈을 벌어봐야 가난에서 탈출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 할 뿐더러 공부해서 좋은 직업을 구하는 것이 시간은 걸리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는 보다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이후로 나이키, 아디다스, 게스 등을 입고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 하지 않게 되었고, 보세신발과 옷만으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고의 전환도 생겼다. 어두운 지하에서의 삶을 밝은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나에 대해 정의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할 수도 있다. 내면과 무의식에 대한 명확한 조명없이는 누구나 스스로를 개념지을 수 없다. 다만, 나의 사고와 행동은 당신의 근면과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우리를 지켜준 헌신과 희생으로부터의 감명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를 '나' 답게 하는 것은, 집, 승용차, 재력, 지위, 명품이 아니다.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내면의 소리와 사고내용과 성숙, 그리고, 실천적 행동의지와 실행에 의한다. 당신의 거친 손마디가 '나'를 키우고 '나'를 정의하는 개념요소들을 우주로부터 끌어와 나에게 탑재시켰다. 나태를 기피하고, 실패로부터의 빠른 회복탄력성, 삶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끌어올렸듯 밝은 세상을 추구하려는 크고 작은 노력, 채무자의 자식이라는 오라의 제거는 당신의 거친 손이 똥 묻은 팬티를 빨던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인생의 전환점을 돌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었고, 당신의 거친 손은 더 이상 거칠어질 이유가 없어졌지만, 당신이 거친 손을 아파하고 뼈마디로부터 불편한 고통을 겪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에 대한 정의도 변화되어 간다. 비록 물려받은 세속적 속성의 것들은 하나도 없지만, 당신의 거친 손이 나를 키운 바람이었고, '나'가 잔존한 삶에 대해 어떠한 꿈과 목표를 가지게 될지에 대한 사고의 타격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삶이란 문제의 전체이고, 고통의 공기이다. 언제나 성공만 할 수 없고, 언제나 실패만 연속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만약 '나'가 삶의 고뇌와 대면하여 지치고 힘들어 한다면, 나는 당신의 거친 손을 기억할 것이고, 당신의 거친 손이 다시 나를 일으킬 바람일 것이라 고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