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y essay

당파싸움의 기원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는 적자 출신이 아니라 서자 출신의 왕이었다. 때문에 선조는 내적으로 왕의 지위유지에 대한 심각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 판단에는 신하들이 자신의 존위를 함부러 할 수 없도록 파를 나누어 서로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려고 하였다. 이것이 당파싸움, 계파정치의 시초이다.


패거리 정치를 하다 보니 요직이란 요직에는 자기 패거리 인사로 채워야 했고, 때로는 모함을 일삼고, 역모의 죄를 씌워 삭탈관직시키거나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는 국익, 국민이 후순위이고, 자기 세력 유지와 증강에 몰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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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발발 1년 전 1590. 선조는 일본으로 황윤길, 김성일을 사신으로 보내는데, 김성일은 전쟁의 기미가 없다 하였고, 황윤길은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보고하였으나, 동서간의 패권싸움 때문에 김성일은 선조에게 진실을 고하지 않았다. 김성일 또한 진실을 고하면 조정은 물론 인심이 동요할 것이라 뒷전에서는 그리 말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무 준비없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마자 18일만에 서울을 빼앗기는 파죽지세로 당한다. 각 고을 수령들은 "도망쳐 목숨을 보전하라!"라는 격문을 부치고는 도망갔고, 수비하라고 건축한 성에는 싸울 장수도, 병사도 없었다. 그러니, 대부분 왜군은 무혈입성하면서 수도를 찬탈하게 되고, 선조는 개성으로 몽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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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화친이니 강화냐, 응전이냐, 명나라에 보고해야 하냐 마냐 등 온갖 아젠다와 관련해서 당쟁을 하고만 있었다. 어린아이가 죽은 어미의 옷고름을 헤치며 젖을 빨려고 울고, 부부간, 부모간에 서로 잡아먹어 그 뼈가 산적했다.


누구 덕인가. 지도자 하나가 제 안위만을 생각하여 신하를 나누고, 그 신하들을 이리 썼다 저리 썼다 하면서 세력만 늘려주니 군주의 선택이 정확한 것을 택하면 다행이고, 부정확한 것을 택하면 난리가 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확성이라는 것도 어느 한 패거리가 우세할 때는 그것이고, 어느 한 패거리가 우세하지 않을 때는 그것이 아니다.


우리의 당파싸움, 패거리정치의 역사적 연유는 바로 이 시점에서 비롯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국민들로서는 한심하기 짝이 없고, 늘 손해의 귀속은 국민들에게만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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