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2년에 조금 못 미치는 2년전에 뇌척추동맥박리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간 적이 있었다. 내 침상에는 사자성어가 적혀져 있는 푯말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절대안정'이었다. 먹고 자고 싸는 것도 모두 침상에서 해결해야 했다. 움직이다가 뇌동맥이 더 찢어질 수도 있고, 터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최소 1개월 입원을 했어야 했는데, 일이 많아서 열흘만에 조기퇴원을 '간곡(?)'하게 부탁하여 퇴원했다.
역시나 사무실과 사건의 진행은 거의 정지상태에 놓여 있었고, 직원들이 나름의 판단과 경험으로 대처하고는 있었지만, 입원전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여하튼 일을 했고, 법원도 출석했다. 그러다가 재차 응급실을 방문하기를 무려 4차례 더 했다. 나는 동맥의 박리만큼 정신적 박리도 함께 겪었다. 가족들에게 폭력적 언행을 일삼았고, 그로인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어머니가 나를 이상하게 여겨 몇일간 혼자 생활해야만 했다. 나는 '두려움'을 인정하기 싫었음을, '질병에 대한 나약함'을 인정하기 싫었던 허영 때문에 두려우면서 강한 척 한 것이었다.
마치 피고인이 자백하듯 나는 나의 상태를 가족과 의사에게 알렸다. 그리고, 심적 불안과 정신적 공포에 대해 순순히 인정했다. 그것을 인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 순간에 여러 치료를 받았고, 주변의 도움도 현재까지 한창이다. 현실이 계획과 역행하거나 질병으로 균형을 상실하거나 잘못을 저질러 양심이 훼손되었거나 등 고통과 위기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는 '그러한 물적, 심적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다. 진실한 '인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치료도, 위기에 대한 처방도, 인생의 개선도 시작점을 찾을 수 없다.
누군가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먼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미안해!', '용서해줘!'라고 말하기 전에 진정으로 과오를 인정하는 단계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사과의 진실력이 힘을 받을 것이다.
사회조직, 정치조직,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송구', '죄송'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내뱉어봐야 신빙성이 없다. 진실성이 없다.
나는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만약, 나의 과실로 누군가 상처를 입는다면 먼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부터 할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강인한 자세이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7). 인정하지 않고 삶을, 관계를, 상황을 개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