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이론이라는 것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가장 하위욕구부터 상위욕구를 피라미드 형태로 구분지어 계층을 이루는 욕구에 대한 설명과 이론이다. 자아실현이 가장 큰 욕구단계의 상층부를 차지한다. 누구나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었다면 5단계 욕구 중 최상위 욕구를 실현한 것으로 보아도 좋은데, 저 상층부가 가장 높고 좁은 걸 보면 자아실현은 매우 어려운 것이고, 여기에 세속적인 것을 부가하면 부자, 엘리트, 정치인 등으로 예시를 들 수 있다.
생리적 욕구는 먹고, 자고, 싸고, 생존의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욕구이다. 의식주를 둘러싼 욕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생리적 욕구가 생존의 유지차원에서 만족되면 욕구충족이 되어야 할텐데, 인간이 그렇지가 않다. 그 다음단계로 상향조정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더 좋은 위치의 아파트, 더 비싼 아파트, 고급진 외국음식, 명품가방과 옷 등으로 생리적 욕구의 충족이 되지 않는다.
나아가 욕구의 각 단계를 차근차근 올라간 사람은 드물다. 부모로부터 몇 단계 뛰어넘어 자아실현의 욕구만 채우면 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받은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생리적 욕구충족만으로도 에너지가 고갈될 지경인 부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제5단계에 속한 부류에게 여전히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현상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재물, 더 많은 명예를 추구하고 독점하며 사익을 위해 그것을 사용한다. 그래서, 매슬로우 5단계는, 그리고, 부와 권력, 명예의 재편성은 아래 버섯모양으로 변하고 있다.
그저 살 집이 있고, 때에 따라 끼니를 거르지 않고, 번갈아 입을 수 있는 가난한 우리가 더 행복할 수 있다. 가난한 우리는 풍족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만족이라는 것을 알며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5단계를 실현했다고 하는 부류 중 일부는 특권의식이 팽배하고, 조용한 국민들을 무시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겉으로야 가난한 우리에 대해 희생과 헌신을 약속하며 가식적인 관용을 보일지라도 속으로는 가난한 우리들을 모자란 인간들, 노력부족으로 그 꼴로 사는 부류들이라며 치부해 버리는 것이 지배적인 사고체계를 이루고, 이타적 감정도 메마른 부류들이 바로 저 5단계에서 생리적 욕구를 결합하는 인간들이다.
버섯이 대가리가 점점 커지면 줄기와 뿌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기 마련이다. 아니면 줄기가 대가리의 무게와 부피에 끊어져 버리던가.
가난한 우리도 욕심은 있다. 더 벌고 싶고, 잘사는 사람들처럼 즐기고 싶고, 명품이라는 것을 중고품이라도 가져보고 싶다. 인간의 뿌리깊은 본성을 인간들은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우리에게 남을 짓밟거나 무시하거나 가식적인 행태를 유지하여야 할 권력과 지위가 없기 때문에 가난한 우리는 더 즐거울 수가 있다. 우리가 눈과 귀로 보듯이 올라가면, 쌓으면, 얻으면 만족을 모르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좀 더" 밖에는 뇌와 가슴에 남는 것이 없다.
가난한 우리가 상위층일 수 있고, 즐겁고 행복하려면 저 상위층의 이중적인 모습을 비판할 줄 알고,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면 된다.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도 저렴한 지위에 있는 가난한 우리가 마음까지 가난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가족들과 옹기종기 일상적인 밥상을 두고 도란도란, 토닥토닥하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저 5층에 사는 사람들 중 가족간에 우애와 사랑이 왜곡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말이다.
그래서, 만족과 감사를 아는 가난한 우리가 상위층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