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tter life

가난한 우리가 상위층이다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이론이라는 것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가장 하위욕구부터 상위욕구를 피라미드 형태로 구분지어 계층을 이루는 욕구에 대한 설명과 이론이다. 자아실현이 가장 큰 욕구단계의 상층부를 차지한다. 누구나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었다면 5단계 욕구 중 최상위 욕구를 실현한 것으로 보아도 좋은데, 저 상층부가 가장 높고 좁은 걸 보면 자아실현은 매우 어려운 것이고, 여기에 세속적인 것을 부가하면 부자, 엘리트, 정치인 등으로 예시를 들 수 있다.


매슬로우.jpg 출처:네이버 이미지

생리적 욕구는 먹고, 자고, 싸고, 생존의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욕구이다. 의식주를 둘러싼 욕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생리적 욕구가 생존의 유지차원에서 만족되면 욕구충족이 되어야 할텐데, 인간이 그렇지가 않다. 그 다음단계로 상향조정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더 좋은 위치의 아파트, 더 비싼 아파트, 고급진 외국음식, 명품가방과 옷 등으로 생리적 욕구의 충족이 되지 않는다.


나아가 욕구의 각 단계를 차근차근 올라간 사람은 드물다. 부모로부터 몇 단계 뛰어넘어 자아실현의 욕구만 채우면 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받은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생리적 욕구충족만으로도 에너지가 고갈될 지경인 부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제5단계에 속한 부류에게 여전히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현상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재물, 더 많은 명예를 추구하고 독점하며 사익을 위해 그것을 사용한다. 그래서, 매슬로우 5단계는, 그리고, 부와 권력, 명예의 재편성은 아래 버섯모양으로 변하고 있다.


버섯.jpg


그저 살 집이 있고, 때에 따라 끼니를 거르지 않고, 번갈아 입을 수 있는 가난한 우리가 더 행복할 수 있다. 가난한 우리는 풍족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만족이라는 것을 알며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5단계를 실현했다고 하는 부류 중 일부는 특권의식이 팽배하고, 조용한 국민들을 무시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겉으로야 가난한 우리에 대해 희생과 헌신을 약속하며 가식적인 관용을 보일지라도 속으로는 가난한 우리들을 모자란 인간들, 노력부족으로 그 꼴로 사는 부류들이라며 치부해 버리는 것이 지배적인 사고체계를 이루고, 이타적 감정도 메마른 부류들이 바로 저 5단계에서 생리적 욕구를 결합하는 인간들이다.


버섯이 대가리가 점점 커지면 줄기와 뿌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기 마련이다. 아니면 줄기가 대가리의 무게와 부피에 끊어져 버리던가.


가난한 우리도 욕심은 있다. 더 벌고 싶고, 잘사는 사람들처럼 즐기고 싶고, 명품이라는 것을 중고품이라도 가져보고 싶다. 인간의 뿌리깊은 본성을 인간들은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우리에게 남을 짓밟거나 무시하거나 가식적인 행태를 유지하여야 할 권력과 지위가 없기 때문에 가난한 우리는 더 즐거울 수가 있다. 우리가 눈과 귀로 보듯이 올라가면, 쌓으면, 얻으면 만족을 모르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좀 더" 밖에는 뇌와 가슴에 남는 것이 없다.


가난한 우리가 상위층일 수 있고, 즐겁고 행복하려면 저 상위층의 이중적인 모습을 비판할 줄 알고,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면 된다.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도 저렴한 지위에 있는 가난한 우리가 마음까지 가난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가족들과 옹기종기 일상적인 밥상을 두고 도란도란, 토닥토닥하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저 5층에 사는 사람들 중 가족간에 우애와 사랑이 왜곡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말이다.


그래서, 만족과 감사를 아는 가난한 우리가 상위층인 이유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코로나에 대한 사적 대책] 문화의 중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