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m을 지켜야 우리 같은 놈이 살 수 있다"
태평씨의 운전경력은 20년이 훌쩍 넘는다. 운전이 익숙해지면 운전 자체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다른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휴대전화로 메세지 보내고, 라디오나 음악에 취하고, 몸매 좋은 여성이 횡단보도에 서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태평씨는 운전하다가 휴대전화를 자주 본다. 태평씨는 진행신호가 뜬 것도 모르고 휴대전화를 보다가 뒷차의 '빵빵'소리에 못내 미안해 하며 차를 다시 출발시킨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멋쩍어서 출발을 매우 빨리 한다. '부~앙~'. 태평씨가 여유로울 때는 비상신호로 뒷차에게 "미안합니다"라고 사인을 보내기도 하지만, 마음 급할 때는 그냥 냅다 뒷차와 거리를 벌려 버린다.
태평씨는 출근길인지, 퇴근길인지 어느 길에서 과속을 할까 생각해 본다. 반반인 듯 하다고 생각하면서 운전을 하다가 앞차가 '거북이 걸음'으로 가자 차선을 변경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태평씨가 앞차 때문에 다른 차선의 차보다 뒤쳐지자 마음이 급해졌는지 '빵빵' 경적을 울렸다. 그래도, 앞차는 마이웨이였다. 태평씨는 점점 짜증과 함께 앞차를 어떤 식으로든 회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좌우 차선상태를 두리번거린다. 여의치 않다. 태평씨는 다시 한번 '빵빵' 경적을 울렸다. '야 인간아! 좀 빨리 가라!'. 태평씨는 듣는 사람없이도 말을 해댄다. 그런데, 시속 50Km로 가는 앞차가 정상이었다. 이보다 빨리 가려는 태평씨가 위법이었다. 태평씨는 "언제 '60Km'에서 '50Km'로 바꼈지?" 혼자 말한다. 앞차가 맞고, 태평씨가 틀렸다.
태평씨는 '그래도 그렇지, 도로상황에 따라 속도를 좀 내다가 과속단속 카메라 앞에서 속도를 줄이면 될 거 아냐!'라고 앞차 뒤통수에 대고 계속 궁시렁댄다. 태평씨는 결국 차선을 변경해 앞차를 추월하면서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60Km'에서 50Km로!
법, 도덕, 공공의 약속 등 규범은 크고 작은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결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규범(Norm)이 존재하고 구성원들이 이를 준수할 때, 사회는 협조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구성원들도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 규범이 있고, 대다수의 구성원이 이를 준수한다는 신뢰가 있을 때, 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구성원들이 더러 있다. 그러면, 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되고, 협조적 분위기는 와해되며 결국 구성원의 결집력은 상당 부분 손상된다.
신뢰가 무너지 사회는 규범이 대체로 지켜지지 않고, 구성원들 역시 규범을 지키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다. 누구는 규범을 지키고, 누구는 어긴다면 불편하게 규범을 지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태평씨가 과속단속 카메라 코 앞까지 과속하다가 그 앞에서 준법운전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다수의 구성원들이 존재하는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협조적 사회는 없다.
태평씨는 자기 생각대로 운전을 해서 목적지까지 이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과속단속 카메라 앞에서는 법을 준수하는 올바른 구성원으로 내비쳤으니 과태료를 물지 않아도 된다. 태평씨는 '거북이 걸음'의 앞차를 융통성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평씨가 과속을 했고, 규범을 위반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융통성의 문제가 아니다.
내로남불! 이중의 잣대!
바른 규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규범을 따르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규범의 의미를 각자의 해석을 통해 편리하게 적용해서는 안된다. 태평씨는 50Km를 규범으로 알고 있지만, 카메라나 경찰이 없는 구간에서는 마음껏 엑셀을 밟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태평씨는 규범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편향되게 적용한 셈이다.
그런데, 유머같은 일은 태평씨가 자신에게 적용하는 규범과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규범이 동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준수되어야 할 바른 가치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갈등의 해결!
태평씨는 사소한 규범이 있고, 크고 중요한 규범이 있다고 생각한다. 규범은 분명 구성원을 결집하는 기능을 하지만, 규범을 둘러싼 해석과 적용이 이중적이고, 지키는 자와 어기는 자가 구분된다면 규범의 사회 구성원 결집 기능은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태평씨가 속해 본 적이 없는 권력사회, 상층사회에서 벌어지는 규범위반은 늘 태평씨가 욕을 해대는 뉴스이다.
인간 사회가 규모가 커져 내부갈등이 심해지면 "Norm"을 이용해 분열을 강화하고, 분열된 사회 조직과 구성원들로 하여금 편향된 생각을 가지게 하고, 급기야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것으로 이용할 수 있다. 유머같은 일은 분명한 표준이 존재함에도 결집이 아닌 분열로, 그리고, 반대세력을 추방에 규범("Norm")이 기능한단는 점이다.
태평씨는 뉴스에서 규범을 위반한 고위층, 부유층이나 인간이 해서는 안되는 타인에 대한 학대(살인, 감금, 아동학대 등)에 대해 분노한다. 태평씨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분노한다. 하지만, 규범을 위반한 자들 중 반성하는 이들도 있고, 겉으로는 반성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 규범을 하찮게 여기는 부류의 이들도 있다.
태평씨는 말한다. "저런 놈들은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