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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May 05. 2016

이별, 수천번 더 마음이 바뀐다.

윤소평변호사

누군가와 이별을 결정하기에는 수천번 이상 마음이 흔들리고 바뀐다.


단순히 연애시절의 이별은 단 둘간의 관계에서의 관계설정을 다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과 감정만을 놓고 결정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별후에 한시적으로 찾아드는 외로움과 상실감만을 제대로 극복할 수 있다는 계산만 설 수 있다면 실행에 옮길 수가 있다.





이혼은 다르다.


많은 의뢰인들이 이혼을 하겠다고 서슬퍼렇게 사무실로 찾아와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서도 사건을 진행하기를 주저하는 경우를 상당히 자주 경험했다.


이혼의 경우에는 여느 이별과 달리,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1 사건본인들(이혼소송에서는 자녀를 사건본인이라고 부른다)


혼인을 한 후에는 자녀를 출산하게 되고, 자녀가 어느 한 쪽의 부모와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혼을 쉽게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혼한 가정의 자녀라는 사회적 선입견과 편견 또한 자녀들이 받도록 하고 싶지가 않다.


이혼 후 당장에는 재혼생각이 없지만, 아직 젊고 재혼의 기회와 상황이 되면 재혼결정을 하게 되는데, 자식들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2 향후 생계유지에 대한 두려움


맞벌이라고 하더라도 함께 소득이 있어서 생활하던 때와 비교했을 때 전체 소득이 감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향후 생계 유지와 자녀 양육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두렵기까지 하다. 양육비를 상대방으로부터 지급받는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지급받는 양육비보다 비용이 더 지출되기 마련이다.


홑벌이일 경우, 특히, 전업주부생활을 오래 한 경우에는 경력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홀로 생계유지를 해 나간다는 것이 가히 두렵기만 하다. 재산분할을 두둑히 받더라도 이같은 두려움은 여전히 남는다. 이혼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이유다.


#3 개인적인 삶에 대한 회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왜 일어난 것인지 돌이켜 보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기는 하지만, 상대방과 좋은 감정으로 혼인해서 행복하게 지낸 시절도 있다. 막연한 향수가 되어버렸지만, 잘 해낼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가 든다. 다시금 참고 살고 싶어진다.


#4 자기 잘못에 대한 반성


이혼을 했다는 말을 꺼내면 그 이혼이 타인으로 하여금 납득이 되는 이혼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후자는 당사자가 잘못을 한 경우이다. 당사자가 부정행위를 하였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났음에도 가정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취향과 욕구로 인해서 일을 그르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자기 반성적 차원에서 이혼을 주저하게 된다.


#5 상대방의 사죄의 의사표시


상대방이 혼인파탄의 결정적인 영향을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지속적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경우에는 이혼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 한다. 속는셈치고 다시 한번 이혼을 보류한다.


#6 사회적 편견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혼사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여전하다. 자랑할만한 꺼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일 경우에는 이혼을 쉽게 결정하지 못 한다.


#7 재산분할


재산형성이 일방 배우자의 명의로 신탁되어 있거나 타방의 전적인 기여에 의해 형성된 것이어서 분할받을 몫이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에는 현재 누리고 있는 상태를 상실할까 두렵기 마련이다. 다 빼앗길까 두려워 이혼을 쉽게 결정하지 못 한다.


#8 다 좋은데 이것 하나만


상대 배우자가 전반적으로 마음에는 든다. 다만, 술, 도박, 지나친 취미생활, 지나친 신앙생활, 무관심, 대화부족 등 일부만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 이혼사유에 해당하는 사유라고 하더라도 다른 부분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참고 살게 된다.


#9 부모님 생각


출가를 하더라도 부모님이 신경에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식이 이혼을 하겠다는데, 어느 부모가 마음아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모님 생각에 이혼을 잠시 미뤄둔다.


#10 신앙, 기타 가치관


신앙에 의해서나, 자신의 가치관, 신념에 의해 이혼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혼인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통상 상대방이 이혼을 요구함에 거절하는 형태로 혼인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상 혼인파탄이라고 볼 수 있거나 상당 기간 부부의 실질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면 이혼판결이 날 수가 있다.





이제는 무던해 졌지만, 이혼사건의 의뢰인들이 갈팡질팡, 오락가락하는 것에 대해서 초기에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는 하더라도 공감할 수 없었다.


'아니, 뭐 때문에 참고 살지?'. 이것이 내 속의 답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사건처리 건수가 늘어감에 따라 나는 이제 의뢰인의 심리상태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고, 계약후 착수금을 지급하지 않더라도 독촉하지 않는다. 차라리 사건을 진행하지 않는 것도 다행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사무실 운영에 대한 걱정은 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결정한 것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엄밀히 따져서 나의 문제는 아니고, 의뢰인의 문제이다. 나의 업무영역으로 진입되었을 때만이 나의 문제가 된다. 그것도 직업적인 측면에서.


나의 사무실로 상담전화를 걸 때까지, 사무실로 발걸음을 할 때까지 수천번 이상을 의뢰인을 고민하고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밤잠을 설쳤을 것이고, '하냐, 마냐'를 놓고 수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변호사 비용, 절차비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마음을 고쳐 먹었을 수도 있다.


나의 바램은 수천 번 이상 흔들린 마음의 갈등 끝에 결정한 선택이 가장 좋은 결론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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