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이상적인 인간사회는 어쩌면 수렵채집을 하던 기원전 어느 시대가 아닐런지 모른다. 그때는 다같이 사냥하고 다같이 열매와 채소를 채취해서 공동으로 나누어 먹었다. 물론, 노인과 어린이, 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그들을 수렵채집 활동에서 열외시켜 주었고 샤먼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족장, 추장 등은 신의 소리를 듣고 전달해 주거나 지식과 경험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수렵채집에서 제외될 수 있는 반대급부를 제공했다. 모두가 일하고 모두가 먹는 세상인 셈이다.
하나의 가정을 해 보자. 정당하게 수렵채집활동에서 제외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구성원은 예외없이 수렵채집활동에 참가해야 한다. 쿤타(예시)라는 젊은 친구가 힘센 남자구성원과 함께 사냥에 참가했고 열심히 창을 던지고, 화살을 쏘아댔지만 쿤타의 화살은 사냥감에서 모두 빗나갔다. 사냥감에 창과 화살을 꽂아넣은 것은 쿤타를 제외한 나머지 남성들이었다.
실혈로 쓰러진 사냥감을 포박해 거주지로 돌아와 춤을 추며 하늘에 감사한 후 이를 구성원 모두가 나누어 먹는다. 그러나, 쿤타에게는 배식을 하지 않는다면. 이유는 쿤타가 던진 창과 화살은 사냥감의 실혈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쿤타! 너는 고기 먹지마! 네가 던진 창과 네가 쏜 화살은 전혀 도움이 안되었잖아!"
하지만, 쿤타 역시 "그 당시" 분명히 고기를 나누어 먹었을 것이다. 수렵에 참가한 사실만으로 사냥감의 고기 일부를 나누어 먹을 자격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라는 것은 그 사실 자체로 공동으로 기여하고 공동으로 나눠 먹는 기본전제를 가진 구성체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사고로 쿤타에게는 고기를 나누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선뜻, 먼저 들었을 것이다. 나만 그랬을 수도 있다. 곰곰하고 찬찬하게 생각하기 전, 쿤타가 축제에서 제외되더라도 쿤타는 불만을 가져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이 크게 부당하지 않아 보이고 격하게는 오히려 합리적이고 정당해 보인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쿤타! 고생했어. 많이 먹어. 다음에는 네 창과 화살이 사냥감의 숨통을 끊어 놓을거야!". 아마 이런 대화를 쿤타의 동료들이 말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면 "쿤타 너는 열매나 채소나 캐!", "사냥에 나오지 말고 도움이 되야 말이지!"라고 하지 않았을까.
쿤타의 촌락에서 피어났던 공감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