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tter life

[생각]6일 낮과 7일 밤 동안 잠들지 않기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BC 2750경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죽음을 두려워 하기 시작하고 죽음을 모면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의 바다를 건너 인간으로서 영생을 얻은 우트나피슈팀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


우트나피슈팀은 대홍수에 대한 신들의 예언에 의해 방주를 만들어 천재지변을 모면한 현자이다. 우트나피슈팀이 죽음의 바다 건너에 있다고 하니, 길가메시는 그 바다를 건너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닷가 술집주인 시두리는 "죽음의 바다를 건넌 사람은 없었고 누구의 접근도 허용치 않는 죽음의 바다를 건넌들 영생을 얻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길가메시를 만류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죽음의 강을 건너게 해주는 뱃사공 우르샤나비를 만난다.


영생을 얻은 인간인 우트나피슈팀은 길가메세에게 영생의 비밀을 일러준다. 그리고 대홍수와 이를 피할 수 있었던 방주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6일 낮과 7일 밤을 잠을 자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길가메시는 뱃사공 우르샤나비를 찾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는 동안 너무 지쳐서 잠이 들고 만다. 잠을 자면 안되는데 말이다.


우트나피슈팀의 아내가 길가메시를 위해 구운 빵을 길가메시의 머리맡에 두고 그간 잠에 빠진 일수를 체크했다.


첫날 구운 빵은 바싹 말랐고

이튿날 구운 빵은 상했고

사흘날 구운 빵은 촉촉했고

나흘날 구운 빵은 희게 변했고

닷샛날 구운 빵은 곰팡이가 생겼고

엿샛날 구운 빵은 신선했다


길가메시는 이레(7일)가 되는 날 깨어났다. 우트나피슈팀이 깨웠기 때문이다. 영생을 허락하는 신들을 잠들지 않고 기다린 우트나피슈팀과 달리 길가메시는 여독으로 오히려 기다려야 할 날들을 잠으로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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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는 영생을 얻는 것에 실패해 망연자실했고, 죽음을 피할 길이 없어 슬퍼했다. 그리고, 다시 우르크(현세적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만무하다. 우트나피슈팀은 길가메시가 왔던 문을 통해 고향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듣는다.


우트나피슈팀은 뱃사공 우르샤나비에게 길가메시를 단장시키고 그의 여정을 마쳐 우르크에 도착할 것을 명한다. 이에 더해 우트나피슈팀은 길가메시를 위해 아프수로 가는 수도관을 열고 물에 들어가면 가시나무 같은 식물이 있는데, 그 가시가 길가메시를 찌를 수 있다고 말해 준다. 그 가시나무 꽃은 회춘초라고 비밀을 알려준다.


길가메시는 몸에 돌들을 달고 물 속으로 들어가 가시에 찔리면서도 회춘초를 잡아 몸에 달았던 돌들을 끊어내고 파도에 밀려 해안으로 쓸려간다. 길가메시는 다시 젊어질 수 있다는 희망에 가득 차 있다. 길가메시는 시원한 물이 솟는 샘으로 내려가 몸을 씻었는데, 회춘초의 냄새를 맡은 뱀이 회춘초를 물고 허물을 벗어가며 달아났다.


길가메시는 영생을 얻는 것도, 회춘초로 다시 젊어지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얻지 못 했다. 길가메시는 우르크라는 도시국가의 왕이고, 영웅이었으나 영생자는 될 수 없었고, 다시 젊어질 수도 없었다.


불멸이 아닌 필멸!


인간이든, 그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 불멸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신뿐이다. 길가메시는 영생을 찾아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불멸이 아닌 필멸인 인간의 한계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성 때문에 도전과 모험이 인간에게는 값진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색, 영생에 대한 꿈의 자각, 회춘에 대한 실패 등 길가메시의 도전이 실패로 끝난 것은 맞지만, 그의 도전정신과 모험의지는 불멸인 것이다. 마음은 불멸이다.


죽음은 우리가 찾아가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그 자체가 때와 곳을 가려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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