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의뢰인들 중에 요즘 뉴스를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크게 공감한다. 어느 리서치에 의하면 신뢰도 1위는 KBS, 꼴찌는 조선일보 관련인데, 사실 조선일보는 매년 신뢰도 꼴찌한지 꽤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뉴스가 넘치고 넘쳐서 사실 어떤 보도가 실체적 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수단도 너무 넘쳐나서 진실된 사실과 정보를 얻기가 곤란한 세상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수 밖에 없다.
1. 정치색이 그나마 옅은 경제신문, 경제방송을 본다
매일경제, 해럴드경제, 파이낸스 등 경제에 대한 기사가 많은 언론을 대하거나 경제관련 라디오 방송, 채널을 시청한다. 음모와 가짜뉴스는 보통 정치와 관련이 많기 때문에 경제에 관한 기사는 대체로 중성적, 중립적 내용을 내포하게 된다.
2.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을 둘 다 본다.
우리가 보수언론, 진보(좌파)언론이라고 자리매김하지 않더라도 어떤 언론이 보수적이고, 어떤 언론이 좌파적인지 알 수 있다. 예전처럼 종이신문을 보는 경우가 현재는 드물고, 인터넷을 통해 신문이나 기사를 접하기 때문에 보수적 언론의 표현과 내용, 진보적 언론의 표현과 내용을 모두 살펴보면 어떻게 하나의 사실관계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어쩌면 더 혼란에 빠질 수 있겠으나 혼란에 휘둘리는 것이 어느 한 쪽에 매몰되는 것보다는 낫다.
양자간의 해석이 혼란을 주더라도 그러한 상태는 유동적이지만 어느 한쪽에 매몰되면 그것이 경화되어 편파적 사고와 경향은 더욱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3. AI의 취향저격에 저격당하는 수단은 피한다.
AI의 추천기능이 문제인데, 어떤 대상이나 물건을 검색하면 추천기능이 관련있는 영상, 기사 등을 표출시킨다. 지속적 반복적으로 AI에 의해 추천되는 정보와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관람하게 되는 경우, 사고는 점점 무의식적으로 편향된 채로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다.
내심의 편향성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지만, 이를 외부로 표출하거나 타인에게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대체로 타인이 편향에 배치되면 그 타인의 전부를 부정하게 된다.
4. SNS 그룹 형태의 커뮤니티를 여러 개 가입해서 정보를 얻던지, 아니면 아예 특성화된 그룹에 가입을 차단한다.
우리가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자주 어울릴 기회가 많다. 이유는, 인간이 하는 교류는 결국 어떤 주제에 대한 정제되거나 그렇지 못한 표현이 허용되는지 여부에 따라 편안함을 느끼거나 불쾌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은 비슷한 사고체계, 편향을 가진 무리와 더 어울릴 가능성이 높고, 그러한 편향은 집단화되어 집단적 구획을 차지하게 된다.
5. 다른 지역 출신의 지인들, 다른 연령대의 지인들의 기사(?)를 일단 모두 긍정한다.
지역적 성향, 세대적 성향이 구분되는 계층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에 관한 기사, 기사적 표현물에 대해 일단 수긍하는 태도를 가져 보아야 한다. 그리고, 비판과 비난은 뒤로 미룬다. 왜 그들은 특정한 현상과 사실에 대해 그러한 해석을 내 놓는지에 대해 선제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것이 소음인지 정보인지, 견해인지 잡소리인지 구분해 내기가 쉬워진다. 마냥 자신의 입장과 고지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날아가 버릴 수 있다.
그러니, 뉴스를 신뢰하지 못하고 외적 표현과 달리 그 내면에 무엇인가 숨겨진 사실이나 진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들기 마련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한데 다양성의 실종과 더불어 일도양단의 관점이 집단화되기 때문에 뉴스와 정보, 소음을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로 자신을 내달리게 하고, 결국 편향된 사고의 경화가 이루어져 향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