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희망은 품는 것이고 기대는 거는 것이다. 기대는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희망은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램하는 것, 향후 잘 될 가능성이다.
그래서 희망사항이라고 표현할 때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확실하고 간절하게 바램한다기보다 '그러한 상황, 상태가 현실화된다면 좋을텐데'라는 구체적이지 않으며 다소 허황된 생각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 희망사항입니다"라고 할 때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 불가능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대는 원하는 것이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갖은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즐거움을 절제해서 미래에 유보하는 등의 유, 무형의 지출 내지 투자가 개입한다. 희망사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지만 기대가 허물어지고 실현되지 않았을 때 패배감, 우울감 나아가 절망감에 빠지기 쉽다.
이루어지면 좋으나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크게 고통받지 않을 희망사항과 이루어져야 하는 당위성과 가능성이 허물어지진 기대는 기다림의 보상이 없기 때문에 크고 작은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기대는 원하고 바라면서 기다림의 인내를 거치는 것으로 기대가 허물어졌을 때는 물적, 심적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기대는 순수하게 기대를 거는 사람의 주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기대한 것의 실현은 지극히 주관적 만족을 가져올 수 있다. 기대의 망실은 주관적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기대를 걸고 기다린 과정이 전혀 헛된 것은 아니다. 또한 기대한 것이 오로지 자신의 주관,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대의 현실화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허물어진 기대는 져버려야 한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내적 성숙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기대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로 삶이 전개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주식투자를 예로 들면 안 입고, 안 먹고 아껴 종잣돈을 만들어 주식을 매수한 경우, 주식가치의 상승은 희망사항이 아니라 기대의 영역에 속한다. 만약, 주식가치가 급상승해서 돈을 벌어서 사치품을 사거나 재투자를 했다가 투자원금마저 잃어버릴 수도 있다. 돈을 따본 경험의 맛 때문에 대출도 받고 지인들로부터 돈을 끌어다가 주식투자를 재차 한다.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다시 손해를 보게 된다면 원금상실이 아니라 채무자가 되어 버린다. 만약, 애써 모은 종잣돈을 첫 투자부터 잃어버리거나 주식가치상승분이 미미한 경우 딴돈을 조리있고 규모있게 사용하게 된다.
극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주관적 기대가 실현되었을 경우 오히려 미래에 악영향을 야기할 수 있고, 실현되지 않았을 경우 인생을 좀더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기대를 져버리면 삶이 좀더 평온해진다. 기대를 걸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기대한 것이 실현되는 것이 인생 전반에 걸쳐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실현되지 않는 것이 인생 전반에 걸쳐 좋은 양분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