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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Mar 10. 2022

찰나의 순간, 역전의 구현

일상의 변론

우연히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플랫폼에서 UFC와 같은 격투기 명장면, KO 명장면 모음, 하이라이트 모음을 보게 되었다.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더라도 한번 클릭하면 후일 연관 동영상이 게재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눈을 자극하는 제목과 격투기 장면들이 연관해서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격투기의 다이나믹함 때문에 전통 복싱은 재미없어 졌다. 어릴 때 한국 복싱 챔피언들이 나오는 경기를 보고는 했었는데, 입식타격의 K-1, 프리파이팅의 격투경기가 인간의 잔인성과 폭력성을 대리만족시켜주는 줄 알면서도 누군가가 승리하고 누군가가 링바닥에 쓰러지더라도 격렬한 싸움 끝에 결정난 승부 중 명승부는 나에게는 가히 놀라움을 주었다.

승부는 겉보기와 다르다!

경기전 양쪽 선수를 보면 특히 외관만 보았을 때, 신장, 체중, 근육량, 몸매 등의 차이가 드러난다. 전문가가 아닌 시청자로서는 슬림하고 쪼개진 근육이 온 몸에 장착된 선수가 이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 그런 선수가 승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승부는 겉보기와 다르다. 물살인 듯 한데, 강력한 펀치와 킥이 순식간에 발사되어 멋져 보이는 선수를 바닥에 눕혀 버린다. 펀치와 킥의 속도도 물살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확실한 것은 무도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제한없는 방식으로 쓰러뜨리고 유효득점할 수 있는 공격을 많이 하면 승리한다. 몸매, 체중, 근육의 탄력성과 모양 등은 승부를 예측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승부는 지난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결정된다

시선을 교환하고 공격자세를 잡은 뒤 경기가 시작되면 상대에게 번개같이 달려들어 승부를 보는 선수보다는 상대와 긴장상태에서 공격포인트를 노리며 대치상태를 유지하는 경기가 대부분이다. 양 선수의 HP가 최대치인 상태에서의 경기는 시청자에게는 다소 지루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하지만, 공격하지 않으면 상대를 이길 수 없고 대치상태를 유지하더라도 HP는 점점 떨어지기 때문에 치고 받는 공격과 방어가 수차례 교환된다. 어떤 선수가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유효하게 공격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고, 상대방이 피를 흘리면 피를 흘리지 않는 쪽이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상대방의 출혈을 목격하게 되면 자신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선수가 부어올라 엉망이 된 선수를 지속적으로 공격하다가 역공 한방에 승부가 순식간에 갈린다. 이런 경기가 명장면으로 선정되는구나 생각한다. 계속 얻어맞다가 피를 흘리고,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다고 하더라도 찰나의 순간에 공격해 들어오는 선수를 찰나의 공격으로 바닥에 눕힐 수가 있다.


얻어 맞은 횟수와 충격, 출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을 만회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 기회의 순간을 제대로 포착해야 한다.


역전은 마지막 남은 에너지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의 구현이다

격투기를 많이 시청한 것이 아니어서 용어나 기술에 대해 문외한이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 타격, 테이크다운, 암바(서브미션) 등으로 구분되는 듯 하다.


실로 엄청나게 얻어맞은 선수, 넘어뜨림 당하기를 수차례 당한 뒤 눕혀져 있는 상태에서 상당히 얻어맞은 선수가 순식간에 목, 팔, 다리 등 관절을 잘 꺾어서 상대방이 패배를 인정하게 만든다. 기이한 것은 저토록 얻어맞았는데, 승부가 관절꺾기 하나로 180도 뒤집힌다는 점이다.


그렇다. 역전은 포기하지 않는 한 할 수 있다. 역전의 결과가 승리와 성취로 귀결되려면 남은 에너지를 최대한 짜내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까불면 패배한다

전적이 화려한 선수가 신예선수에게 패배하거나 복귀한 노장에게 패배하는 경우가 있다. 훈련의 양과 노력과 연구결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이겠지만, 찰나의 순간, 역전의 구현이 챔피언에게 일어나지 않고 도전자에게 일어났기 때문일수도 있다.


다만, 명장면 동영상 속의 화려한 챔피언의 패배에 대한 설명 동영상을 보면, 연승을 하거나 무패의 전적을 가진 선수들이 어느 시점을 지나면 교만해진다는 점이다. 훈련양이 감소했을 수도 있고, 생활을 절제하지 못해 정신무장이 도전자의 그것에 미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패배를,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 한 챔피언은 상대방을 경시하고 자신의 깜냥을 과신한 나머지 승부에서 패배하고 패배와 실패의 경험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사람이 교만해지면 결과는 좋지 않다. 까불면 지는 법이고, 타인을 가벼이 여기고 자신을 높게 여기면 결과는 패배일 가능성이 높다. 교만한 사람에게 찰나의 순간이나 역전의 구현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상대방은 교만하고 거만한 챔피언에 대해 오래고 깊은 연구가 되어 있지만, 교만하고 거만한 챔피언은 상대방의 연구도 부족하고 연구할 상대방의 자료도 사실상 부족하다.


격투기 명장면, KO 명장면에서 나는 삶에서의 승리와 패배, 일의 성취와 불성취가 어떤 이유로 달리 결정나는지 격투 속에서 어슴프레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너무 잔인하고 폭력적이니 아이들이 있을 때는 시청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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