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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Feb 17. 2022

정치, 정치인이 가장 후지다

일상의 변론

우리나라 국민의 우수성은 역사상 외부의 적이 침략해서 여러 차례 패배하면서도 국체와 국호(고려, 조선, 대한민국), 국혼을 현재까지 유지함으로써 이미 입증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침략을 당해 국가의 존망이 바람 앞에 등불일 때, 사직을 보전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치인들은 도주에 앞장섰지만, 이름없는 백성들이라고 칭하는 국민들이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나라를 지켜내 왔다. 그들에게 왜 이름이 없었겠는가. 그들에게 보전해야 할 가문과 가족이 왜 없었겠는가. 나라의 안위가 경각에 달했기 때문에, 나라없이 백성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싸워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이 나라를 지켜온 것이다. 


K-POP, K-무비, K-드라마, K-스포츠 등 'K-'(K 방역은 제외)는 음식부터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는 문화 전반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휘젓고 있다. 우리 국민에게만 존재하는 '한(恨)'의 문화가 식상스러운 표현으로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선진문화를 주창하는 국가들의 국민들은 앞다투어 우리의 음악, 음식, 영화, 컨텐츠에 매료당하고 있다. 물리력의 지배는 한시적이지만, 정신과 사상, 문화의 지배력은 다소 영구적이다. 축소해서 남한 국민들의 우수성은 국경을 넘어 다른 민족들을 지배하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국민들, 개별 주체의 우수성은 국가를 연명시키고 국가를 기르고 국가를 알리고 있지만, 국민의 정신적 성숙과 정치역량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오직 정치, 정치인들만이 후졌고, 그 수준이 가파르게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한때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른채 그것을 추구했다. 독재 세력을 무너뜨리는 것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구체적인 개념과 실천방식을 몰랐기 때문에 독재를 청산한 뒤, 부분적이면서 집단적인 독재는 여전히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패거리 정치, 진영정치, 정당주의국가의 의미를 상실한 정당정치. 그 속에 들어간 정치인들은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엘리트이면서 엘리트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손가락질받는 그런 부류로 평가받는 괴상한 정치사회를 만들었다. 


독재가 아닌 자유와 민주주의를,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국민 개별 주체들은 매번 실망하고 기대가 체념과 포기상태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설상가상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비참한 형국에 와 있다. 


남한의 국민들, 개개인들과 일부 개체들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감동하게 하고, 문화를 선도하고 식습관까지 지배해 가는 상황에서 정치와 정치인들은 너무나 후지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너무 추상적으로 추구했기 때문일까. 민주주의는 패가 나뉘어 자기 주장을 일관되게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틀이 되었고, 자유주의는 전통적인 인간적 관습과 오랜 지혜를 무시하는 일탈적 행동의 표상이 되었다. 


우리의 자유와 민주는 미국이나 일부 유럽국가가 그토록 갈망했던 진솔한 것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 우리는 그저 독재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것의 구현이라 믿었던 것일까. 바이러스의 변형처럼 독재의 다른 형태가 여전한데도 정치, 정치인들은 다른 선진국의 정치, 정치인들에 비해 너무나 후졌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정치적 역량이 이미 정치, 정치인들의 그것을 능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냉소는 우리 국민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무관심보다 더 위험하다. 아무것도 나아질 것이 없어서 이러저러해도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냉소는 우수한 국민, 개별 주체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다. 


피곤하고 지치고 짜증나더라도 정치, 정치인들의 후진성을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질타하고 소리를 내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내가 우수한 국민, 개별 주체 중 한 점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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