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언젠가 현대사회에서는 '통화는 있으나 진정한 대화는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이후로 몇년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지금도 소통수단의 다양화에 비해 진정한 대화는 더 희박해져만 가고 있는 듯 하다. 소통수단이 다양화되었지만 소통의 내용을 타인이 볼 수 있어서 내밀한 대화나 내심의 코어에서 우러나는 대화는 아이러니하게 더 희박해져만 가는 듯 하다.
그리고, 타협과 협상을 위한 대화는 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힘의 논리에 의해 접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즉, 타협적 대화가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타협적 대화가 현실에서 실행되기 어려운 이유야 숱하게 많겠지만, 개인적 의견으로는 각자 내심에 '나는 너보다 낫다'라는 강한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으로부터, 상대방에게서 정보와 지식을 얻으려 할 때, 대화는 커녕 거의 순종적, 순응적 자세로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집중하고 지극히 겸허한 자세를 견지하게 된다. 이유는 상대가 '나보다 낫기' 때문이다. 화두와 관련해 토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정보와 지식을 얻어야 할 때는 낮은 자세를 갖출 수 밖에 없다. 상대가 나보다 더 풍부한 면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치국면, 상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야 할 때, 상대가 손해를 감내해야 자신이 이익으로 인과관계가 인정될 때, 타협적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쌍방이 다른 곳을 보고, 다른 말을 하기 때문에 도무지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 타협적 대화의 각 당사자가 '나는 너보다 낫다'라는 저변의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연하게 자신을 높이고 상대를 폄하하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타협적 대화가 실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갈등만 증폭되어가고 문제해결의 접점을 발견하기란 요원해 보이는 것이다. 연인, 부부, 부모와 자식, 이해상충한 비즈니스,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참가자간 산술적이면서 기술적인 이해관계의 해결이 적용되기 힘들 경우, 갈등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접점을 찾아야 하는 경우 적어도 '너나 나나 똑같다'는 기본 베이스를 깔고 대화를 실행해야 한다.
물론, '나는 너보다 못하다'는 생각으로 대화의 테이블에 오르면 좋겠지만, 이익과 손해, 계산의 개입, 권력의 득실 내지 증감 등의 결과가 초래되는 영역, 사안에서 저러한 겸허한 자세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일방적인 희생만을 초래할 뿐이다. 그런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인간들이 타협적 대화에서 대화가 아닌 비난과 욕설을 터뜨리는 이유는 상대방 대비 자기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정의와 공정, 형평이란 상대적인 것이며 가변적인 것이지 누가 어떤 개념을 신봉한다고 해서 다른 누가 그 신봉의 대상을 당연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철학적, 종교적 해법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내지 못 하고 있다.
'나는 너보다 낫다', '내가 믿는 것, 판단한 것이 너보다 옳다'라고 굳건히 믿고 있는 사람에게 동의하면 같은 편이 되는 것이고, 부정하면 다른 편이 되는 것이다.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믿음이, 그리고 동조가 갈등하는 집단을 형성하고 진영을 편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타협적 대화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얼굴색을 꾸미면서 내복 속에 칼을 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격언이 있는 것이다.
과연 "나는 너보다, 너네보다 나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