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습도없이 균열된 토지만큼 마음의 빈곤과 고갈을 제대로 대비해 주는 영상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각종 지표, 수치, 데이터가 마음의 가난을 초래하는 것이 현대의 실상이다. 물가지수, 성장지수, 금리, 이자율, 할인률, 주가상하락율 등등 차분하고 여유있는 사고를 해보면 사실 허상이고 허수에 불과한데, 이러한 고안된 수치 따위가 객관적 생활수준과 주관적 기분을 들었다 놓았다 하니 그야말로 맹랑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고안된 개념들에 대해 유전적 적응과 진화를 아직 완료하지 못 했다. 토지, 금, 은, 다이아몬드에 대한 가치에 대해 적응해 온 역사적 시간에 비하면 고안된 개념들에 대한 우리의 적응기간은 턱없이 짧기 때문이다.
문제적 상황은 이러한 고안된 개념들로 인해 현실이 직접 영향을 받고 부정적 측면에서 마음이 가난해지는 상황까지 압박한다는 점이다. 가난의 수준에서 완전 고갈되면 한 인생이 극단적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타인의 생명을 마감시키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마음의 가난과 고갈의 문제는 그 단일한 인생의 주관적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일부 영향권 범위 내에서 외부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내적 원인이 외적 파급효를 초래하는 심각한 사건의 단서가 될 수 있다.
'팍팍', '빡빡'. 손바닥이 지면에 강한 추진력에도 불구하고 밀리지 않는 것, 나사가 풀리거나 조여지지 않고 힘에 저항하는 것, 문의 개폐가 원활하지 않는 것 등 마찰과 저항에 부딪혀 답보상태가 짧거나 길게 유지되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한 이 표현들이 어떻게 생활에 적용되고, 우리의 내심까지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게 된 것일까. 사람이 마음의 빈곤과 고갈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몸이 마음을 죽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몸을 죽이기도 한다. 항상 명제가 참이면 역도 참인 법이다. 인생은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에, 인간을 영혼, 사고, 육체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또는 영혼은 픽션이고 사고와 육체로만 구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하나가 피곤하면 다른 하나는 저절로 피로해지는 관계에 있다.
이성과 본능, 정신과 육체. 이러한 이분적 사고는 동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서양은 이분적이지만, 동양은 일체적이다. 3분, 2분, 1체.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현대적, 현재적 삶이 물질적 빈부를 떠나 아주 무관할 정도로 마음의 가난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마음이 힘들다. 허세를 떨어도 내심의 파문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이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저하되고 침체되어만 가는, 그리고 불안하고 압박적인 마음을 이기는 다른 마음이 중요하다. 이기는 마음, 그것은 어떤 상대, 상황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하고 고갈되어가는, 때로는 고갈된 마음 자체를 이기려는 마음을 말한다. 이기는 마음은 순간의 결심으로, 오래된 믿음으로 어느 것으로든 발생시킬 수 있다. 다만, 용량에 있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탯줄이 잘릴 때부터 모든 것과 투쟁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온갖 욕구와 불충족 사이에서의 좌절감과 그것에 굴복할 것인지,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영원한(죽음을 전제로 하면 일시적이나 한 개체를 기준으로 할 때 영원한) 투쟁, 트러블한 워터를 헤엄쳐야 하는 고단함에 던져진 것이다. 여기서 이기는 마음만이, 이겨내려는 마음만이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까보면 힘들지 않은 인생이 없다. 종류와 정도와 대처가 다를 뿐이다. 이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마르고 갈라진 땅에 350ml 생수 1병을 쏟아보면 땅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폭발할 것 같은, 갈라진 땅이 조만간 들러붙을 것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이기는 마음은, 지금 가난하고 고갈되어 가는 내 마음의 생수 1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