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생활
지금, 현재, 현대사회의 전반적인 색조라고 하면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내일에 대한 불안, 소득에 대한 불안, 금리와 물가에 대한 불안, 대출채무에 대한 변제에 관한 불안, 노후에 대한 불안, 가족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 건강에 대한 불안, 정치적 불안, 사회적 분란 등 잠에서 깨면 불안을 증가시키는 수많은 것들이 생활과 삶을 힘들게 만든다. 무엇 하나 긍정적이고 기분좋은 것이라고는 아주 드물거나 말소되어 버린 듯한 지금의, 현재의, 현대의 상황과 시간대는 결코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다.
빚은 증가하고 있는데 일부가 되어 버려서 그 액수를 제외한 나머지가 삶의 내용을 형성한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이라는 시대상황 아래 우울감, 강박감에 시달리는데, 빚의 증가나 유지 또한 시지푸스 산의 돌덩이처럼 늘 제자리인 상황이 암울할 뿐이다.
매체는 사망사건, 살인사건, 화재사건 등 암울하고 부정적이며 불쾌한 소식을 전하기에 여념이 없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언젠가 토론을 하며 상기한다. 어느 매체도 오늘 국가 전체의 신생아 출생소식, 100일, 돌을 지난 영유아의 숫자에 대해 카운팅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오로지 죽음, 부정, 범죄, 정치적 갈등 소식만이 난무할 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의 감정, 사고, 삶이 긍정적 에너지를 충전할 수가 없다. 게다가 긍정적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자발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이 상당히 필요한 반면, 부정적 상태에 빠지는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뿐 에너지나 의지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부정적인 상태로 빠져든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그것을 해갈하려는 노력이나 시도는 하지 않고 그 상태로 지나쳐 버리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사고에는 혈전이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사건과 계기로 분노와 폭력으로 발산되기도 한다. 그다지 화내지 않아도 될 사건임에도 우리는 후회할 것이 명백함에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일삼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적 노력은 기대를 져버리지 않으려는 희망을 가지고 유지하는 것이다. 삶이 일정한 불안과 부정적 상태에서 언젠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물론 재차 불안과 부정적 상태는 회오리처럼 삶을 휘감을 것이 분명하지만, 내용이 다른 불안과 부정적 상태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인간에게 수많은 고통과 죄의 억압이 있다 하더라도 동물과 달리 대응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고, 그것을 품을 수 있는 노력과 의지발현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달라지겠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 나아가 신나는 사건, 흥분되는 사건이 어제와 달리 삶에 개입되겠지 하는 희망. 그뿐이다. 우리가 좀더 덜 힘들게 삶을 지탱해 갈 수 있는 방법은 기대와 희망을 져버리지 않는 최소한의 소극적 노력뿐이다. 그것이 적극적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더욱 덜 힘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