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아무리 둘러 봐도 나의 삶이란 누군가의 삶과 구분되지 않고 '근근히' '그저그런' 내세울 것이 없는 것만 같다. 실제 그렇기도 할 수 있고 그렇다고 느낄 뿐일 수도 있다. 보통적이고 평범하면서 두각없다는 삶의 표징은 "내"가 능력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으며 누구보다, 특히 어느 누군가 1명보다 나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절망적이고 슬플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이라는 것, 삶을 바라보는 잠망경의 각도를 조금만 수정해서 고정시켜 본다면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위안이며, 삶이라고 하는 세계에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절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위인,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동일한 조건과 시간과 한계 속에서 구별되는 성과를 나타내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부러워한다. 스스로뿐 아니라 모든 타인이 그런 인간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칭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구별되려고 노력하는 인간, 구별되는 능력을 비자발적으로 타고난 인간, 그것을 도드라지게 뽐내는 인간 때문에 삶이, 생활이, 감정이 균형을 잃고 그러한 인간상을 모방하기 위해, 그것을 추월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런 생각과 감상을 품는 순간 그 직후부터 나의 삶은 불만족이다.
군락, 군집, 집단, 사회, 국가, 세계는 하모니와 균형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래야. 질서라는 것이 개념지워지고 질서가 유지되는 법이다. 그런데, 유독 특별히 구별되는 인간들이 사회를, 집단을, 개별적 인간을 자극하여 무언가, 작위적이고 유의미한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좇아 삶을 바쳐야만 유의미하다고 표본과 예시가 됨으로써 인간들 사이에서 갈등과 내적 불만과 비교의 태양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계급은 최소한이고, 빈부의 차이는 가소로운 것이다.
우리가 구별되지 아니한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그리고 오늘 아침을 오늘 저녁과 별반 차이없이 적당하고 타인과의 차이없이 살아냈다면 이것이 과연 구별되는, 구별되려고 욕구하는 인간들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과 불만보다 무의미한 것인가. 하루라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구별되지 않는 그저 하루를 그저 그렇게 살아낸 것만큼 이 세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진정한 하모니가 아닌가.
근근히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나"를 위축하고 다운시킬 수 있는 상태인가. 삶에서 큰 굴곡과 파동없이 하나의 조각으로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장대한 계획의 일부인지 깨달아야 한다. 시끄럽고 소동스러운 일부의 인간들이 오히려 세계를 어지럽히고 잔잔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생을 복잡한 심경으로 드라이브할 뿐이다.
당신의 인생이 구별없는 듯 하여 근근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삶을 제대로 살고 있고 질서와 균형이라는 전 우주적인 의미에서 유의미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근근하게 살고 있는 인생들은 다른 사람에게 갈등과 불안, 초조와 긴장, 경쟁과 우울 따위의 감정을 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열등한 인간들의 우월성 때문에 이 조화로운 세상에 파열음이 생기는 것 뿐이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근근히 큰 굴곡없이 살아낸 당신. 당신이 커다란 퍼즐판의 한 조각인 것이다. 시끄러운 소음을 초래하는 인간들은 우리가 솎아내야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우리는 개미보다 어떤 측면에서 부족하다. 군락, 군집, 집단, 전체와 질서라는 측면에서 인간은 결코 개미보다 못한 존재이다. 왜냐? 불면을 초래하고 개별 인간에게 불안과 긴장, 초조, 우울을 조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