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tter life

[다이어트]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 사무엘상 3장 4절

성경에서는 여호와가 부르시고 그 부름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는 구절이 상당히 많다. 물론, 신약에도 예수가 부르시고 그 부름에 대상자가 응답하는 구절도 많다. 그런데, 성경을 떠나 누군가 자신을 부를 때 "내가 여기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누군가 자신을 부를 때 대답하지 않는, 대답하지 못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아야 한다. 죄를 지었거나 도덕적이지 못한 일을 저질렀거나 누군가를 속일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타인에게 해를 가하고 책임을 면하고자 할 때 등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고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아니한 경우, 부름에 답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거나 할 수 없게 된다. 최소한 숨바꼭질을 상정하더라도 "나"를 정확히 부르지만 의도적으로 대답하지 아니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다.


"내가 여기 있다"라고 할 수 있으려면 부름의 주체를 향해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죄책감, 수치심, 도덕적 자괴감 등이 있으면 나를 호명하고 호칭하는 것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특히, 절대적 존재의 부름에 대해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떳떳하게 가르침에 따라 삶을 살아온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증명된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오니 적들이 감히 이 바다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이순신 장군은 말씀하셨다. 임금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바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밝게 표명하고 있어야 할 장소에 있으니 부름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체성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을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위적인 현재에 있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빈도가 더 많은 사람들도 있다.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은 뒤가 구리거나 구린 과거를 가지고 있다.


"내가 여기 있다"라고 당당하게 존재, 현재, 위치를 밝힐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판옵티콘(파놉티콘) 감시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