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실패는 어떤 것이든 고통이다. 문제는 고통으로 인해 무너지느냐, 아니면 다시 굳건하게 일어서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일어서려면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리적인든 정신적이든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실패에 가 닿았을 때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고, 실패가 확정된 이후에는 모든 것이 고갈된 상태이기 때문에 삶에 대한 시각은 지극히 회의적이며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 역시 바닥을 드러낸 상태이다.
힘들 때 이 걸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시험을 주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가려 배우라고 아버지를 곁에 두셨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늘 돌봐 줄 수는 없어서 어머니를 곁에 두셨다.
교감하라고 형과 누나를, 의젖하라고 동생을 곁에 두시기도 했다. 실패는 극도의 외로움을 초래하는데 지금 내 곁에 아무도 없는 듯 해도 이토록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미치고 있다. 기독교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지금 이 자리와 그 자리에 두셨다는 것이다.
실패한 아버지가 주정뱅이로 살면서 자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면 우리는 그러지 않으면 되고, 표독스러운 어머니를 거부할 수 없다면 더 이해하려고 해야 하고, 형제들간에 다툼이 있다면 서로의 욕심을 버려야 할 때라고 생각해야 한다. 특히, 실패했을 때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다면 오로지 가족, 친구들로부터 위로받고 그로부터 에너지를 보충받아야 한다. 혼자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과 교만이며 거짓이다. 결코 무너진 순간에 도움없이는 혼자서 일어설 수 없다.
얄궂게도 실패와 고통은 단계적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넝쿨째 굴러오는데 그래서 외롭고 지치는 것이다. 하지만, 손만 뻗으면, 힘들다고 외치기만 하면 가족, 친구들이 있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의지하며 살아가라고 곁에 두신 존재들이다. 애증, 갈등이 있어 남보다 못 한 가족은 아무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며 벽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은 실패와 고난, 그리고 외로움을 극복하기 매우 어려운 상태에 빠지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고 고백해 보라. 자신의 고정된 생각이 얼마나 큰 착각이고 과오였는지 알게 될 것이다.
힘이 들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고백과 자백, 자복이다. 가슴에 가두어 두지 말고 말로,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최우선이다. 아닌 척 가장하면 극복의 기회와 시간은 잃어버리거나 지연될 것이다. 상처를 드러내야 치료할 수 있는 법인 것과 같다.
나는 실패자입니다. 너무 외롭고 힘이 듭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 형제여! 나를 위로해 줘!
자신의 나약함을 표현하는 것이 치부인 것 같지만, 지나친 용기이다. 용기를 부려야 한다. 나는 실패했고, 지금 몹시 지쳤다. 하지만, 일말의 위로와 도움을 받는다면 다시 힘을 내서 삶을 살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시오! 얼마나 쉬운 일인가. 고백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