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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Mar 21. 2016

황혼이혼

변호사칼럼(법률매거진)

황혼(黃昏), 해가 질 무렵 어스름한 타이밍을 뜻한다. 또는 그 어스름한 빛을 의미하기도 한다.


본래 이혼은 법률상 크게 재판상 이혼과 재판외 이혼(협의이혼)으로 구별되는데, 황혼이혼과 일반이혼으로도 나눌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황혼에 대비되는 타이밍은 새벽의 여명 정도일텐데, 혼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는 것을 가리켜 여명이혼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냥 이혼이라고 한다. 


왜 자식들 출가 다 시켜 놓고 노년에 이혼하는 것을 가리켜 황혼이혼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단어 자체로는 참 고와 보인다. 아무튼 노년기의 이혼을 가리켜 황혼이혼이라고 부르고 있고 딱히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황혼이혼은 왜 발생하는가. 나름의 몇 가지 이유를 정리해 보겠다.


첫째, 남성은 노년에 접어들면 여성 호르몬(에스트로겐)이 신체 내에서 증가분비한다고 한다. 남자가 나이가 들어 주책을 떤다는 말을 주워 듣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남성이 여성성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사소한 것에 토라지게 되어 이는 다툼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둘째, 남성의 퇴직으로 인한 상실감을 들 수 있다. 젊은 시절을 직장과 사업장에서 일해 오면서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여성에 비해 적었는데, 소득활동의 중단만큼 한 인간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평가를 절하시키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실감은 상대 여성에 대한 불만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여성지위의 상대적 상승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높였다기 보다는 남성 스스로가 자신의 지위가 낮아졌다고 느낌으로써 상대적으로 여성의 말과 행동이 고압적이라고까지 느끼게 만들 수 있다. 


넷째, 황혼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부부의 경우 통상 혼인기간이 20~30년은 되고 그 이상인 경우도 많다. 현행 실무상 재산분할 비율의 고려 요소 중 하나가 혼인기간인데, 이 정도가 되면 여성이 재산분할로 인정받을 수 있는 비율을 40~50%에 이른다. 다른 어느 시기에서의 이혼보다 재산분할 비율의 보장한도가 높다. 


다섯째, 여성이 자녀양육과 출가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통상 여성의 경우 자녀가 어리기 때문에 참고 살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자녀의 혼인시즌에는 이혼할 생각을 미뤄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사항이 없어 이혼결정의 심리적, 가정적 부담이 없어진다. 


여섯째, 남성이 주거지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진 것이 서로 어색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성이 물리적으로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짓지 않아도 될 밥을 매 끼니마다 지어야 하는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남성 역시 집 밖에 있던 시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특별히 집에서 할 일이 없고 사사건건 여성에게 트집을 잡게 된다.


일곱째, 평균수명이 상당히 길게 보장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60세에 이혼을 하더라도 남은 20년을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린다. 이제는 목매여 기다리던 월급봉투도 사라진 마당에 결정을 못 하게 했던 경제적 요소가 사라진 셈이다. 남성도 반대와 만류, 부양때문에 미루어 왔거나 포기했던 자신의 꿈과 취미를 위해 여생을 살고 싶어진다. 이는 부딪히면 다툼의 원인이 된다.


여덞째, 여성은 남성의 소득활동 기간(가동기간) 많은 의사결정에서 좌절되었다는 패배와 무시에 대한 보상심리의 작용을 들 수 있다. 남성의 경제적 역할에 의존하다보니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었고 반대의사표시를 참아야 했다. 하지만, 무기가 평등해지니 반대 목소리는 높아지고 이는 다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아홉째, 대화없이 바쁘게 지내온 세월이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을 생소하게 만든다. 무언가 부부로서의 대화와 친밀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어색하다. 남성이 결정하고 여성이 따르기만 하던 시절에 향수가 생긴다. 여성은 남성이 '하던 데로 하지'라고 생각한다.


열째, 부부관계에 있어 중요한 요소는 성적 유대인데, 이 시기에는 그런 요소가 상당히 감소되거나 아예 망실되고 없는 경우가 많다. '속 궁합이 좋아 헤어지지 못 한다'는 속언은 유효하지 않다.


실제 황혼이혼에 속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사건상담을 해 보면,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그리 업무가 가중하지는 않다. 재산분할이 주된 경우가 많아서 양육과 관련한 복잡한 다툼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삶의 측면에서 볼 때 황혼이혼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황혼이혼이 남성에게는 손해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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