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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Jul 01. 2016

드라마 자문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

윤소평변호사

2015. 6.경부터 2016. 2.경까지 KBS 주말드라마 '부탁해요 엄마' 자문을 하게 되었다. 극중 고두심(임산옥)의 큰아들 오민석(이형규)이 로스쿨 출신 변호사라서 변호사 업무연기에 필요한 상황, 대사, 극중에서 인물들이 법적인 문제를 겪게 되는 설정에 필요한 상황과 대사 등을 검토하고 수정해 주는 것이 자문업무의 주된 내용이었다.


자문한 내용대로 극중에서 연출이 되고, 주인공들이 내가 써준대로 대사를 하는 걸 보니 너무 신기하고, 이 드라마를 위해 나도 한몫 이바지하는 듯 애착도 생겼다.


그런데, 회가 거듭될수록 작가들로부터 질의가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들어왔고, 자문에 들이는 시간도 점점 늘어만 갔다. 그리고, 자문내용도 질의가 들어온 날 오후까지, 12시까지 등등 검토할 시간도 점점 촉박해지고, 데드라인에 걸린 작가처럼 약간의 스트레스도 받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큰 줄거리는 정해져 있지만, 구체적인 해당 방송분 제작에 있어서는 잦은 변경이 이루어진다.





# 간접광고[PPL(Product PLacement)]


그 중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PPL(Product PLacement, 영화나 드라마 속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상품을 일컫는 것으로 브랜드명이 보이는 상품뿐만 아니라 이미지, 명칭 등을 노출시켜 관객들에게 홍보하는 일종의 광고마케팅 전략)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TV 수신료만으로는 드라마의 수익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PPL을 통해 드라마의 흥행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PPL을 방송국에 의뢰하는 업체들은 광고대금에 비례해서 드라마 연출에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연기자들이 치킨집을 오픈하고,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 연기자들끼리 홍삼이 들어간 상품을 선물하거나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장면에서 고기굽는 불판 상품을 이용해야 한다거나 특정 음료 프랜차이즈점에서 만남을 주로 가져야 하는 장면을 삽입해야 한다. 그것도 광고대금에 비례해서 일정한 시간동안 노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연기자에게 대본이 전달되기 전에 여러 차례 대사의 수정이 가해지고,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의 연기분량이나 대사 등도 달라진다. 그러면, 내게 오는 자문내용도 여러 차례 수정이 될 수 밖에 없다. 시간도 그 때문에 촉박해진다. 


# 시청률


모든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 주말드라마는 다소 진부하지만 가족애를 그린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주말이라고 하는 특성, 시청 시간대를 고려해 시청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수 연령층을 타겟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로 5~60대가 타겟이다. 드라마의 특성에 따라 더 낮은 연령층도 고려대상에서 제외하지는 않는다. 


주말드라마는 고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드라마가 크게 흥미를 유발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일정한 시청률은 기록된다고 한다. 고공 시청률을 유지하려면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자극할만한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 


시청률이 떨어지면 돌연 흑기사나 흑장미를 등장시킨다. 아이돌 가수나 개그맨들이 난데없이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로 등장한다. 이렇게 되면 시청률은 반짝 상승한다. 혹은, 극중 갈등관계나 애정관계를 삼각관계로 재편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삶을 돌연 시한부 인생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스토리의 큰맥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시청률의 변화로 인해서 해당 회분에 내용변경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대본도 바뀌고, 대사도 바뀌고, 자문내용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 연기자의 스케줄


주인공일수록 예능프로그램이나 영화, 다른 드라마 등에 출연해야 하는 등 스케줄이 빡빡하다. 해당 연예인의 스케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연예인의 일정에 따라 촬영일지가 변경되고 드라마 방영시간을 벌충하려면 새로운 설정과 상황을 만들어내야 한다. 


# 야외 촬영장에서의 상황


세트장이나 방송국에서 촬영하는 경우에는 큰 변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헤드헌터들이 섭외한 야외 촬영지에서는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기상상황도 한 몫한다. 이렇게 되면, 촬영일지가 바뀌고, 필요에 따라 대본도 변경된다. 


# 작가의 변심


다른 모든 상황들이 촬영일지에 따라 무난히 순항을 하더라도 작가가 연기자의 연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거나 자신의 극이 제대로 연출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대본수정을 가할 수 있다. 상황, 설정, 느낌도 달라진다. 


대본은 사전에 나와 줘야 연기자들이 연습하고, 극중 인물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대사를 암기 할 시간도 필요하다. 그런데, 여러 가지 상황과 맞물려 대본수정이 여러차례 되면, 최종 대본이 나오는데, 시간이 지체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연기자들은 마치 벼락치기 하듯이 대본을 습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리모콘으로 쉽게 돌려보던 드라마 한편이 만들어지는데, 많은 인원들이 필요하고,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드라마 외적인 변수들이 수없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연한 시청자중 하나에서 브라운관 너머의 고단함과 분주함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드라마를 바라보는 시각도 여러가지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누군가는 수익의 관점에서, 누군가는 홍보의 관점에서, 누군가는 흥미로, 누군가는 시청률의 관점에서, 누군가는 방송국의 이익의 관점에서. 참으로 다양한 시각으로 한편의 드라마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로서는 그저 심금을 울리고 주말의 쉼 속에서 힐링이 될 수 있는 드라마를 원하고 다음회를 초조하게 기다리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가 최고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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