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ny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평변호사 May 15. 2016

꽃게 사례금

윤소평변호사

# 대면상담


2010. 10. 어머니와 남자 고등학생(17세)이 사무실로 상담을 왔다. 남학생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내내 시선을 바닥으로 고정시키고 있었고, 어머니가 내게 말문을 열었다.


"아들이 성폭행 범죄에 연루되었는데요"


# 사건의 전말


들어보니 남학생과 친구 4명이 2010. 7. 1. 18:00경 다른 여고생 두 명과 소위 '헌팅'을 해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 후 같은 날 20:00경 남학생의 친구 집에서 여학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는데, 친구 4명 중 2명은 여학생 중 1명과 집으로 가기 위해서 먼저 나가고, 남학생과 친구 2명, 그리고, 나머지 여학생 1명이 계속 그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남학생의 친구 2명이 술에 취한 여학생을 성폭행하였고, 친구들이 자신들이 피해 여학생과 간음행위를 하는 동안 남학생에게 자리를 피해 달라고 해서 남학생은 그 집의 화장실에 있었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졸기만 하였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모두 술에 과하게 취해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행위가 발생한 후, 한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고, 남학생도 화장실에서 졸다가 나와서 함께 방에서 잠을 잤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피해 여학생은 없었고, 친구 중 1명만 남아서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피해 여학생은 남학생과 그 친구들은 신고했고, 경찰은 이들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특수강간)죄로 수사를 개시했다. 이 죄는 2명이상이 성폭행을 저지를 경우에 더욱 엄중하게 처벌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형법에 대한 특별법이다.


어머니는 내게 억울하다며 사건을 의뢰했고, 남학생은 내 의뢰인이 되었다.


# 나의 변론


의뢰인은 피해 여학생을 성폭행할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친구들이 성폭행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을 뿐, 친구들이 성폭행 행위를 할 당시 그 자리를 벗어나 화장실에서 졸았을 뿐인데, 수사기관 입장은, 의뢰인이 성폭행하기 위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공범이라는 것이다.


의뢰인의 친구들은 실제 성폭행 행위를 하였으니 응당 그에 관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현장에 같이 있었고, 피의자들과 친구라는 관계 때문에 의뢰인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수사였다.


우리 형법은 공모를 하고, 역할을 분담하면 공범으로 처벌한다. 즉, 성폭행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망을 보거나 다른 공범들의 범행을 가능하게 할 경우에는 함께 처벌된다는 의미이다.


사건기록이 뚫어져라 검토한 후 20쪽이 넘는 변호인의견서를 작성해서 법원에 제출하고, 공판기일에 나가 증인들을 다그쳐 가면서 열심히 무죄를 주장했다. 판사의 표정과 반응이 영 쉬원치 않아 불안했다. 너무 의뢰인의 입장에 치우쳐 있었나, 놓친 사실관계나 쟁점이 있었나 등 별별 아쉬움에 법정을 나오는 걸음이 무거웠다.


# 판결선고


선고는 2주후. 통상 형사사건에서 선고기일에는 변호인이 출석을 하지 않지만, 이 사건은 직접 출석해야만 했다. 결과가 너무 궁금했고, 좋은 소식이 간절했다.


판사가 말한다.


"피고인 1. 2.는 단기 몇 년, 장기 몇년".


청소년 범죄는 정기형을 선고하지 않는다. 정기형이란, 징역 몇 년 이렇게 기간을 정하는 형을 말한다. 청소년의 경우에는 몇 개월 이상 몇 년 이하로 정한 후 반성 정도에 따라 풀어준다.


"피고인 3.은~"

(내 의뢰인 차례다).


"무죄".


아! 이 맛에 변호사하는구나 싶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 했다. 재판을 종결할 당시 시원찮은 표정을 짓던 판사의 얼굴이 참으로 곱게 보였다.  


# 꽃게 사례금


본래 무죄를 받으면 성공 사례금을 두둑히 받을 수 있다. 이 당시에는 성공 사례금 지급이 허용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의뢰인의 형편을 들어보니 어머니가 남학생을 키우고 있어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꽃게, 고등어 등 생선을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아~~사례금 얘기를 어떻게 하나'. 내 형편이 넉넉하다면 시원하게 사례금은 필요없다고 하겠는데, 갈등이 일었다. 이런 갈등으로 하루이틀이 지나가자 남학생 어머니가 사무실로 왔다. 스티로폼 박스 3개를 어렵게 들고 와서 "드릴 게 없어서, 꽃게를 가지고 왔습니다"하는 것이다. 갈등이 종결되는 순간이다. 사례금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하는 것으로.


2박스는 직원들에게 나눠 주고, 1박스를 싣고 와서 집에서 배터지게 가족들과 쪄 먹었다. 배부르니 걱정이 없어지는 저녁이었다.


한참이 지났을까. 남학생(의뢰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케잌을 내게 주겠다는 것이다. 내 생일도 아니고, 생일이라고 하더라도 남학생이 알리가 없는데. 남학생은 제빵사 자격증을 따서 라이센스 취득 후 처음 만든 케잌을 내게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허허, 뭘 이런 걸~"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때는 너무 부끄럽고, 두려워서 제대로 인사를 못 했습니다"

"앞으로 제빵왕 김탁구처럼 되는건가"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날을 기해 한동안은 뿌듯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절제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