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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May 14. 2016

백선생님

윤소평변호사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 백을봉 선생님이 생각난다. 합주부 담당 선생님이셨는데, 당시 연세가 40후반이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고, '호랑이' 선생님이셨다.


나는 사실 음악에 소질이 없음에도 선생님은 나를 '큰북' 담당자로 정하셨고, 나의 연주가 실망스럽자 '작은 북'으로, 그 결정도 후회스럽자 '심벌즈' 담당자로 여러 차례 포지션을 변경하셨다. 하지만, 그토록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 화는 내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벌즈'는 곡의 마지막 종결 부분에서 3번 정도 양손의 심벌즈를 비껴 치기만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즉, 박자. 하지만, 어찌나 성격이 급한지 나는 매번 반박자씩 빠르게 심벌즈를 마찰시켰던 것 같다.


선생님의 여러 차례 지적을 받고, 이번에는 숨을 꿀꺽 마신 후 심벌즈를 치기로 다짐하고 곡의 후반부가 진행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박 빠른 템포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심벌즈 타이밍을 아예 놓쳐 버렸다. 참, 음악적 재능이 없었던 모양이다.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너! 고향생각하니?".


그래도 끝까지 짤리지 않고, 심벌즈 포지션에 남아 발표회를 치뤘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이면 선생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선생님께 편지를 1통 이상 쓸 것을 숙제로 명하셨다. 그때 무슨 배짱에서인지, 아니면 까마득히 선생님에 대한 편지쓰기를 잊어버리고 있어서인지 나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선생님은 편지를 쓴 학생들에게 일일이 관제엽서를 통해 답장을 하셨던 것 같다.


선생님께 편지를 쓰지 않은 나에게도 엽서 한장 날아왔다.


'너는 방학이 다 끝나가는데, 선생님한테 편지를 안 썼더구나.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 너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니, 위인전을 많이 읽도록 해라. 남은 방학 건강하게 보내고, 개학하면 보도록 하자꾸나'


나는 선생님의 엽서를 받고서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남은 방학이 얼마되지 않아서 나의 답장이 개학하면 도착할 것 같았고, 선생님이 먼저 편지를 쓰신 것에 대해 억지로 답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답장을 안 쓰기로 했다.


하지만, 그 때 선생님이 엽서에 적어 주신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니, 위인전을 읽어라'는 명령문이 뇌리에 깊이 박혔고, 나는 진짜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가진 사람인 것으로 기대에 부풀어 실제 위인전을 열심히 읽었다.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에게 보낸 엽서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아 다른 친구들은 어떤 내용의 편지를 받았는지 확인하지는 못 했지만,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에게도 같은 명령문을 적어 보내셨을 수도 있고, 제자들 저마다를 생각하시면서 각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전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건대, 선생님만큼 내 삶에 변화의 계기와 기대를 주는 관계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나쁜 친구들의 나쁜 행동은 참으로 달콤한 유혹으로 내 삶에 빠르고 쉽게 변화를 주었지만, 긍정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 내 삶의 변화를 준 인물은 선생님이 유일한 듯 하다.


지금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선생님이 해 주신 명령문은 아직도 내게 '가능하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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